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사상 최대의 구제금융(2백10억달러)
을 얻어 쓴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우선 지난해말에 비해 65%가량 할인된 국내 우량상장기업을 외국인에게
헐값에 넘겨 주게 됐다.

4일 현재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말보다 37.6 8%보다 폭락했고 싯가총액도
지난해말 1백17조3천7백억원에서 71조3천1백49억원으로 39.2% 줄어들었다.

원화가치는 27.0% 떨어졌다.

외국인들은 IMF한파까지 겹쳐 내재가치에 비해 현저하게 저평가된 국내
기업주식을 다소 고평가된 달러화로 무차별적인 사냥에 나설수 있게 된
셈이다.

낙폭이 컸던 금융주의 경우 대체로 싯가총액이 약 14조원 안팎.

이론적으로 외국인이 국내 상장금융기관의 경영권을 완전 장악하기 위한
비용(51% 지분 취득)은 60억달러면 가능하다.

물론 정부는 국부의 부당한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인인 국내 특정기업
발행주식 총수의 10%이상을 취득하는 순간부터 기존 대주주(이사회)의 동의
를 받아야만 적법성을 인정하는 등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위한 보완
장치를 가동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투자한도가 종목당 26%로 제한된 현행 제도에서도 대농그룹
등 외국인의 공격적인 M&A가 빈발했다.

이미 기업사냥꾼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당량의 주식을 변칙매집한뒤
기존 대주주를 위협, 경영권 획득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한뒤 이를 우호적인
M&A로 위장하는 수법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산업도 외국인에게 활짝 열렸다.

막대한 자금력과 첨단 금융기법으로 무장된 해외 유명금융기관들은 내년
6,7월께부터 이미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국내 금융기관을 상대로 소매및
도매금융시장을 마음껏 유린할수 있게 됐다.

정부는 세계 1백대 또는 3백대 은행정도에 한해 국내 진출을 허용할 계획
이지만 향후 3년간 IMF로부터 자금을 빌려 써야 하는 처지에서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과연 물리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도 문제다.

정부는 국내 보험등 금융기관은 물론 대기업의 경우 합작은행업 진출을
위한 최소한의 자산건전성기준등을 충족하면 심사를 거쳐 은행설립 인가를
내줄 방침이다.

따라서 국내 상위권 재벌그룹의 경우 IMF를 통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외국(특히 미국)금융기관을 파트너로 잡는데 성공한다면 꿈에 그리던
은행의 1대주주가 될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까지도 내국인의 은행 설립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재벌의 사금고화 논리를 들어 내심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 우량기업 또는 금융기관의 단독출자를 통한 은행 설립은
커녕 다른 기업및 금융기관과 공동출자를 통한 합작은행 신설도 당분간
빛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간 철저한 진입규제로 경쟁력 있는 기업의 금융업 신규참여를 금지해
왔던 정부가 IMF의 압력으로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을 사실상 허용한 것은
정책의 진일보로 평가할수 있다.

그러나 합작은행의 경우 내외국인간에 동일인 소유한도를 전혀 적용하지
않고 시중및 지방은행 등에는 엄격한 지분제한을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는 기업집단재무결합재무제표를 연내 도입, 재벌의 재무상태및 경영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했지만 대주주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주식투자자들이 입는 손해를 보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하루빨리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는 제도개선에 힘써
전국민이 1주 갖기운동을 통해 주식시장의 발전을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당국은 철저한 주식동향 분석및 감독강화를 통해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