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의 모과장은 신문 뒤적거리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기껏해야 업무지원을 명목으로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동료들 뒤치닥꺼리나
하는게 고작이다.

3년여간의 해외주재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지 1년이 지났지만 마땅한
보직이 없어 인공위성처럼 과천청사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보직없이 떠도는 국.과장급 이상의 "인공위성 공무원"은 재경원 통산부
건교부 등 경제부처에만 1백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부처에 불필요한 잉여인력이 어느정도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무원수는 늘어나기만 한다.

문민정부들어서만 5만8천여명의 공무원이 늘어났다.

공무원 한사람당 인구수는 갈수록 줄어들어 지난 5월 현재 49.2명에 불과
하다.

영국(공무원 1인당 1백18.8명)수준으로 줄인다면 58.6%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집단의 공룡화는 규제에서 비롯되고 나아가서는 조직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하게 된다.

문민정부들어 규제철폐를 늘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지만 정작 일반국민들은
여전히 규제의 몸살을 앓고 있다.

복지부동과 무사안일, 부처이기주의가 어우러진 고질병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과감한 조직축소와 경쟁도입없이는 정부부문의
효율성 제고는 기대할 수 없다고 잘라말한다.

획기적인 발상전환만이 한계에 다다른 동맥경화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각 부처의 집행업무에 대해 공개경쟁입찰을 도입, 민간이 참여토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예컨대 각 부처의 감사관실이나 법무관실 업무는 민간 회계법인이나 법률
사무소에 문호를 개방, 경쟁을 유도하면 효율성 제고는 물론 인력감축효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청사관리나 우편배달업무 등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인사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고위관리직을 공개채용하는 등 공무원 채용방식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이미 뉴질랜드와 영국 등은 이 제도를 도입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부처의 통폐합과 기능축소는 불가피하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인력감축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통상정책만 하더라도 재경원 통산부 외무부로 나뉘어 서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부처간 중복되는 기능만 조정하더라도 적잖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재경원처럼 단순한 부처 통폐합은 금물이다.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공룡조직을 만든 꼴이 됐기 때문이다.

또 총무처와 공보처 등 불필요한 부처와 정부기능에 대해서는 과감히 축소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가혹한 관리를 받게 된 이상 정부부문이라
해서 이제 더이상 무풍지대로 남겨놓을 수는 없다.

< 박영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