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열 경제부총리가 미쓰즈카 히로시 일본대장상을 만나러 도쿄에 갔던
지난달 28일.

많은 국민들은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외환위기를 넘길수 있도록 제발 도와달라고 일본에 통사정해야 했기 때문
이다.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무엇이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들에게 "구걸"한다는게 "굴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현실은 찬밥 더운밥을 따질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다.

정부는 결국 3일 "IMF 신탁통치" 협약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제2의 국치"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부도 도미노와 금융.증권.외환시장의 마비로 신용공황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 추운 겨울에 수많은 직장인들이 실직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다.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던 한국경제를 누가 이처럼 처참하게 망쳐놓은 것일까.

1차적 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에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가계등 다른 경제주체들도 공범자임에 틀림이 없다.

모두가 "바람"이 들어 거대한 거품경제를 만들어 낸 주역인 까닭이다.

"거품경제"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게 그 반증이다.

개인소득에 대한 신용카드 이용률이 일본은 4.2%인데 비해 우리는 12.6%나
된다.

도시근로자의 외식비 지출비중은 10.0%로 일본의 4.0%보다 훨씬 높다.

1인당 물 소비량도 일본보다 5배나 많다.

93년 이후 수입의류는 매년 62.4%씩 팽창하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그것은 정말 "기적"일 것이다.

기업부문을 보자.

기업들은 내실위주의 경영보다는 확대일변도 성장정책을 취하는 잘못을
범했다.

단기차입금 위주로 자금을 조달해 회임기간이 긴 설비투자나 부동산투자
해외투자 등에 쏟아부었다.

예전 같으면 지속적인 물가상승 등으로 차입금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이었지만 경기불황은 과다한 차입금을 고스란히 기업의 부담
으로 돌려 놓았다.

세계기업들은 숨가쁘게 변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세계적 조류에서 낙오해
있었던 것이다.

조직이 비대화하면서 관료화되고 대기업병이 깊어만 갔다.

가계부문도 마찬가지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비아냥까지 받았던 우리가 "1만달러
소득에 2만달러 소비"를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

호화사치품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월급을 웃도는 사교육비도 눈깜짝 않고
지출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너도나도 해외여행에 나서 달러를 물쓰듯 쓰고
돌아다녔다.

과소비풍토에 투기심리까지 보태져 예약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골프회원권값이
1억~2억원을 호가하고 부동산가격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모두가 자신의 실력이상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한국경제의 좌초는 결국 부풀대로 부푼 풍선(경제)이 바늘(금융위기)에
찔려 하루아침에 터져버린 결과다.

우리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이같은 거품을 빼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국의 예를 봐도 마찬가지다.

장기간의 불황에 신음하던 미국경제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정부와
기업들이 과감히 거품을 빼냈던 덕분이다.

정부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삭감에 온힘을 기울였고 기업들은 인원삭감의
고통을 감수하고 합리화노력을 진행했다.

이와함께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겨나 경제전체의 활력을 회복하는 전기가
됐다.

한국경제를 되살리려면 모두 허리띠를 조르고 함께 뛰는 수밖에 없다.

기업과 국민 모두가 건실한 경영 건전한 생활태도를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사회 각부문의 거품을 빼내자.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되살리자.

< 특별취재단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