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와 동양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기업가나 노동자를 구분할 것 없이
행동양태가 다른 점이 있다.

미국만 봐도 경영자나 노동자들은 마치 수렵민족처럼 미지에의 도전에
과감하고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데 더없는 기쁨을 느낀다.

한편 한국이나 일본인들은 농부처럼 일정한 곳에 머물면서 같은 토지를
꾸준히 경작, 몇년 몇대에 걸쳐 훌륭한 논과 밭을 만드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수렵민족과 농경민족의 차이가 경제행위에서도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동양에서는 종신고용제를 지탱시켜왔고 구미에서는 직장의 자유로운
이동과 기업의 매수합병을 성행하게 만든 근저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무너지고 있다.

하나의 지구촌으로 통합되고 있는 글로벌 이코노미가 문화적 차이를 용납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화의 기준은 구미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이나라 저나라 할것 없이 내집 드나들듯 더욱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금융부문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금융빅뱅은 세계최대의 채권국인 일본의 금융계조차
빅뱅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으며 최대 채무국중 하나인 한국의 금융은
혼비백산할 정도로 야단법석일 수밖에 없다.

IMF구제금융은 거의 강제적으로 우리의 금융빅뱅을 재촉할 것이 틀림없다.

이는 금융계의 통폐합에 따른 대량실업을 초래하게 된다.

아울러 초긴축과 신용핍박에 따른 기업들의 리스트럭처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난공불락이라고 믿었던 거대기업들에서 조차 대량의 해고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내년에는 실업자수가 1백2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에선 금융빅뱅이 노동빅뱅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이는 노동의 유동성이 한층 높아진다는 의미다.

또한 임시직이나 계약직이 급증하게 된다는 말도 된다.

미국이나 영국은 이미 임시직이 25~30%에 이르고 있으며 일본도 파트타임
직만 20%에 달한다.

경제가 정상화돼도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기 어렵다.

요는 대량실업과 노동의 유동화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이 문제다.

노동빅뱅은 이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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