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해서는 합의가 끝났지만 최대 자금줄인 미국과 일본이
새로운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는게 결코 적지 않은 암초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IMF와의 협상은 그동안 금융구조조정과 거시경제
운용에 집중되어 왔다.

이들 항목들은 성장률 3% 물가 5% 등으로 지난달 30일밤 일찌감치 타결됐다.

문제는 미국이 새롭게 제기하고 있는 요구사항들이다.

당초부터 미국은 우리정부가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인 지난달 20일
가이스너 재무부부차관보를 스탠리피셔 IMF부총재 일행과 함께 한국에
파견해 탐색전을 벌인바 있다.

미국으로서는 IMF 구제금융협상을 시장개방을 위한 양자협상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일본도 숟가락을 들고 달려오고 있다.

공짜지원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우리정부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해 재정경제원 관계자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의 발언을 통해 간접추론할수 있지만 그동안 미국정부
의 일관된 요구사항들을 볼때 금융시장 개방이 주된 것이라는 점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미국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금융위기 때도 깊숙이 개입해 시티뱅크의 현지
진출 등 전리품을 챙겼다.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측 관계자는 2일 "오늘 협상의 상대는 IMF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다. 마치 통상협상을 하는 기분이다"며 미국의 요구가
IMF라는 채널을 통해 점차 노골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사실 IMF는 지난 10월에도 연례 조사단을 우리나라에 파견했었다.

그때 IMF조사단은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에서 미국 정부에 제출한
개방 요구문건과 거의 유사한 질문 공세를 우리정부에 퍼부어 댔다.

이번 협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지금쯤은 국내 진출을 희망하는 금융기관들의
명단까지 우리측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외에 보증사채 시장 개방, 단기금융시장 개방도 요구 목록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도 단기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워낙 고금리 시장인 만큼 환율만 안정된다면 한국만큼 금융업 하기 좋은
곳도 없다는 판단을 이들은 하고 있다.

백억달러 이상씩 지원을 한다면 그에 따른 이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배경이다.

우리로서는 별다른 협상 수단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1일에 이어 2일에도 해외에서 영업하는 국내금융기관들은 대부분
심각한 외화부도 사태를 맞았다.

당장의 부도국면에서 협상력이 있을 수 없다.

일부 미국 언론들이 동아시아의 금융위기에는 미국의 음모가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음도 그래서다.

IMF는 3일(현지시각) 이사회를 열고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을 결의할 예정
이지만 미국과의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볼수 있다.

자금지원은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별 신디케이션 구성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