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 < 국문과 4년 >

마광수교수에 대한 시선은 안과 밖에서 심한 차이를 보인다.

안이란 그의 강의나 책을 접하고 토론을 해본 사람들이고 밖이란 피상적
으로 남들 소문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마교수 필화사건을 접하면서 너무 낡아 상식처럼 돼버린 성담론이 "뜨거운
감자" 취급을 받는 것에 문화적 후진국이라는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마교수는 강의시간에 "한국사회에서는 요절하지 않으면 변절한다"고
안타까워 한다.

유행처럼 성담론을 떠들거나 변죽만 울리다가 나이가 들면 유교가부장주의에
순응해 버리는 대부분의 지식인을 겨냥하는 말이다.

마교수의 강의를 듣거나 대화를 나눠보면 그는 결코 계몽가가 될만큼
대담한 사람이 못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사의 지평은 그를 성혁명가내지 성계몽가로 내몰고 있다.

나 자신 마교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수록 마광수식 성담론의 필연성
과 저 정도의 타당성과 논리를 가진 이론이 왜 지식인들의 외면을 받을까
의구심을 떨칠수 없다.

지난 68년 프랑스의 체험처럼 문화적 전위는 언제나 "말하는 지식인"의
몫이다.

마교수가 말하는 야한정신의 요체는 이 사회에 만연한 겉다르고 속다른
허위의식이나 위선을 배격하고 인간본연의 솔직함을 지향하자는데 있다.

유사이래 전무후무했던 "마광수 필화사건"이 길이 길이 기억돼어 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