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수 강의는 밤 8시 20분쯤 끝났다.

청강자들의 질문으로 강의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다.

일부 청강생은 마교수 사무실까지 쫓아와 토론을 벌였다.

강의내용뿐만 아니라 신상고민까지 마교수에게 털어놓으며 자문을 구했다.

마교수 사무실의 문턱이 그만큼 낮다는 증거다.

마교수는 지난 73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83년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 이듬해 연세대 조교수로
취임했다.

한 제자의 지적대로 마교수의 최대 업적은 "통념에 대한 반란, 즐거운
저항"을 들수 있다.

그는 칼이나 돌이 아니 논문 시 그림 소설 에세이등 다양한 문학매체를
무기로 경직된 사회에 저항해 왔다.

그는 지난 92년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검찰에
전격구속됐고 연세대학교에서 직위해제 당했다.

"사회의 합리화수준이 덜돼서 그래요. 성에 대한 논문이나 소설은 무수히
많아요. 유독 내가 도덕적 소탕주의 제물이 된것은 소극적으로 떠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떠들었다는 점과 교수신분으로 자유고백을 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마교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종합예술가로서의 명성못지 않게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33살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할만큼의 천재성이 왜 성문제에
그토록 집착할까.

"저와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별다른 내용이 없어요.
사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의 상당부분은 내가 고등학교때 쓴 글들입니다.
이제 우리사회도 성문화의 실세화를 인정하고 이른바 변태적이고 음란한
내용의 에로티스즘 예술을 양성화하여 억압 은폐된 욕구를 발산시킬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연대에 입학한 한 여학생이 마교수에게
던진 질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친구가 마교수님의 생각이 독특하다고 해서 강의를 들었어요. 그러나
말씀하시는 것이 지극히 평범하고 별다른게 없었어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