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조세실장>

IMF가 우리에게 제시한 긴급자금 지원조건은 극약처방에 다름아니다.

성장률 대폭 인하, 세금인상및 재정긴축, 국제수지적자 대폭축소,
금융기관및 기업에 대한 강도높은 구조조정 등의 지원조건은 우리가 받아
들이기에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에 대한 평가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정치권은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공방에 열중하고 있으며, 노사간에도
책임공방이 일고 있다.

정책당국이 IMF 협상에만 치중하는 가운데 금융시장은 마비되고, 기업은
줄줄이 도산하고 있으며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브레이크 터진 열차 마냥 파국으로 치닫고 있으며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지금까지의 허세를 떨쳐 버리고, IMF가 제시한
각종 거시경제정책과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권고를 적극 수용하여 지혜를
모아 지금의 난관에서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오는 일이다.

지금까지 거시경제의 펀더멘털 지표 등의 겉치레만 믿고 속으로 썩어가는
병을 방치한 실수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며 더 악화되기 전에
우리 경제의 환부를 빨리 도려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첫째 정부는 우리 경제의 실상을 국민에게 보다 정확하게
알림으로써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최근 외국언론을 통해서 우리 경제의 실상을 알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외환보유고 규모, 은행의 부실채권규모 등 주요 문제에 대하여 정부가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가운데 외국언론의 보도가 시간이 지나서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IMF가 성장률을 2.5%로 제한하는 것은 국내수요 조절을 위해 향후 유동성을
엄격하게 조절하겠다는 의도이다.

이에따라 내년에는 고금리가 지속되고 증시회복이 지연되어 기업의
자금난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매출부진과 금융부담 증가로 한계기업의 연쇄도산이
예상된다.

정부는 IMF의 권고사항이 뜻하는 바와 이에 따른 향후 파장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려주어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둘째 종금사및 은행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고 다음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부터 금융시장은 악화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거의 마비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가 종금사, 은행, 기타 금융기관을 각각 내년 1월, 3월, 6월까지
실사하고 3개월내에 구조조정을 마친다는 발표직후부터 각 금융기관은
자산의 건전성제고를 위해 신규대출을 중단하고 기존 대출회수를 서두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연쇄도산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늦춘다고 하지만 이 경우 오히려 금융경색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업의 대량 부도가 발생할수 있다.

따라서 IMF권고대로 부실종금사및 부실은행의 구조조정을 연내로
마무리하는 것이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기업의 대량부도를 막는
길이다.

구조조정시에 발생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교은행을 한시적으로
설치하여 폐쇄되는 금융기관의 대출업무를 관장하고 CP할인 업무를 은행에
전면 허용해야 한다.

셋째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켜야 한다.

외국의 부정적인 시각은 향후의 한국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실물경제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빠른 회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현재 부실기업의 정리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일거에 제거할 수있는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특별법"을 조속히 마련하여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켜야 한다.

넷째 정리해고제가 조속히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과정에서 사측의 일방적인 대량해고및 조직감축은 모든
문제를 근로자에게만 전가한다는 비난과 근로자의 반발을 초래할수 있다.

만에 하나 노사분규 등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 우리 경제의
회생은 상당기간 지연될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구조조정에 있어서 먼저 근로자를 설득하고 근무시간단축
등 다양한 방안을 추구하여야 한다.

다섯째 이번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부문의 비효율성 제거다.

또한 금융기관및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도 조직의 통폐합, 인원감축
등과 같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야 한다.

한편 중앙은행및 금융감독체제정비의 경우 차기정부가 재경원 조직개편과
함께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밖에 금융개혁법안은 진입규제완화및
은행지배구조개선 등과 같은 핵심적인 사항들을 포함시켜 조속히 추진하여
우리 금융에 대한 외국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