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봉혁 <서울국제컨설팅 대표>

요며칠동안 국내외 주요 언론보도는 한국의 외환-금융위기 문제를
머릿기사로 다루며,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원인과 전망을 여러 각도에서
보도하고 있어 한국민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다.

늦기는 했으나 정부가 IMF에 협조를 요청, IMF에서 파견된 경제 금융
외환등 전문가들과 우리정부및 관련기관이 협의중에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보도의 특징을 보면 IMF 대기성차관협정(Stand-by Credit
Agreement)을 "국치"니 "법정관리"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기보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오는것 같다.

왜냐하면 IMF는 모든 회원국이 외환-금융위기에 당면했을 때 그와 협의할
의무를 갖고 있으며, 회원국은 그런 경우 IMF와 협의하여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지원요청을 안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 궁지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정부라 할수 있다.

한국은 과거 10여차례 IMF와 대기성차관협정을 체결한바 있다.

다만 우리 경제를 이런 궁지까지 몰고온 것은 한국사람 모두의 수치로
인정해야 한다.

IMF 대기성차관협정은 IMF가 중심이 되어 우리정부와 협의하여 우리가
해야할 정책 패키지를 세상에 공포함으로써 회원국과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의 신용도를 높이려는 장치인 것이다.

IMF는 우리나라의 출자금액에 비례한 일정액(약 55억달러)과 특별상황에
따라 나머지 필요한 재원(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약 6백억달러 추정)은
미-일 등 정부와 여타 국제 공사 금융기관의 참여로 컨소시엄 성격의
융자단을 형성하게 되며 이의 주동을 IMF가 맡는 것이다.

따라서 IMF 대기성차관협정에 포함될 정책 패키지가 컨소시엄 형성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고 그 지속적 지원은 우리 정부의 정책집행성적
여하에 달려 있다 하겠다.

한국은 1965년에 첫 대기성차관협정을 체결,그후 여러차례 지속된
이 협정은 성공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즉 우리정부 금융기관 민간기업은 IMF 대기성차관협정을 담보로 IDA,
IBRD, ADB 그리고 국제시장에서 들여온 많은 차관이 경제발전에 긴요한
도움이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70년대의 영국,그리고 90년대의 멕시코의 대기성차관협정도
성공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의 대기성 차관협정에 포함된 정책 패키지는 오늘의 상황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나, IMF는 우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외환 위기를 넘기는 대안을
정부와 협의할 것이고 나아가 우리의 금융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
정부재정 긴축의 필요, 통화와 금리및 환율, 물가, 임금정책, 국제수지
적자와 외채 축소조치, 그리고 민간주도 시장경제구축 등 3~4년의 중장기
계획 등이 정책 패키지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IMF간 이런 정책협의는 주권과는 무관하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권위있는 외부 전문가의 자문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욱 타당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다른 점이라면 IMF는 합의된 정책과 구체적목표치 준수를 분기별로
점검, 그 결과를 융자협의단에 보고하는데 집행차질이 현저할 때는
대기성차관협정 자체의 재협상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이에 따른 대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즉시 반영될 것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IMF는 정치적 판단기준보다 객관적으로 경험한
경제원칙을 정책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경쟁국들은 이런 기준에서 대내외 경제 금융 재정 구조조정
등을 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인바 있다.

따라서 이번만은 우리 대통령이 정부의 협상책임자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주고 정치권의 역풍에 대한 방패가 돼줘야 경제논리에 입각한
우리 경제 사회의 장기발전 틀을 확고하게 짤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정부의 협상 책임자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버리고 성실하게
제3자가 수긍할수 있는 원칙아래 합의를 끌어내야 될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협상내용을 일일이 밝힐수는 없으나 일단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정치권과 국민을 설득시킬 의무를 다하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그리고 정치 기업 노동계 지도자들도 이번만은 정치적 당리당략 또는
집단이기를 버리고, 국가경제의 대개혁의 틀을 잡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자기들의 영예로운 몫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전례없는 경제위기와 기회 그리고 도전을 맞고 있다.

이번의 다급한 기회를 놓치면 지난 인류 역사에서 보듯 우리의 잠재력을
발휘도 못하고 후세에 큰 짐을 지워주는 책임을 피할수 없다.

다시 없는 이 기회에 정부와 정치권 지도자 그리고 기업과 노동계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시간을 다투어 자기들의 역할을 희생적으로 담당할때
우리 국민들 모두가 힘을 합쳐 오늘의 위기극복에 동참할 것으로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