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현악기의 떨림판은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다.

이 가죽은 그동안 한국에서 제조해 내보냈다.

성남에 사는 한 여사장이 이를 독점적으로 수출해온 것.

동물애호가들이 이 사실을 알면 크게 분노하겠지만 80년대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수출열기는 이처럼 이상한 물건조차 내다팔 만큼 열성적이었다.

달러가 들어오는 상품이라면 고양이 가죽뿐 아니라 뱀장어가죽에서
쥐가죽까지 무슨 가죽이든 수출했다.

그런데 이런 특이상품을 수출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역절차를 잘 몰랐다.

그래서 중소기업 수출대행업체인 고려무역을 많이 활용했다.

70년대와 80년대에 고려무역을 통해 수출하는 업체들은 한결같이 색다른
품목들을 개발해냈다.

수출확대에 정열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고려무역은 일본에서 광어 도다리 등의 새끼고기를 들여와 충무
앞바다에서 한햇동안 키워 다시 일본으로 수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때 들여온 치어는 "수출용 원자재"로 분류됐다.

수출을 위한 것이라면 물고기조차 원자재로 탈바꿈시켜 관세환급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제도적 지원이 완벽했다는 얘기다.

당시엔 미용손톱 인조눈썹 우산모양이쑤시개 등은 특이한 제품에 속하지도
못했다.

죽은 나무뿌리까지 공예품으로 만들어 수출컨테이너에 실었다.

며칠전의 일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뢰머광장끝에 있는 옛성당을 구경하러 갔다가 바로
이 성당옆에 고려무역의 유럽지부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성당에서 겨우 50m정도 떨어진 작은 빌딩 1층에 있던 고려무역 유럽지부를
찾아가봤다.

그러나 그곳엔 고려무역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은 텅비고 찬바람만 돌았다.

옆가게에 들어가 고려무역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봤더니 철수한지 오래
됐다는 대답만 했다.

그런데 이 옆가게를 보곤 무척이나 놀랐다.

교포가 경영하는 선물가게인데 이곳엔 한국에서온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관광객들은 츠뷜링사가 만든 부엌칼이나 주석잔 등 독일 공예품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광객들이 독일제 칼을 좀 사오는게 뭐 그리 나쁜 일인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차분히 생각해보자.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나무뿌리까지 공예품으로 만들어 팔던
프랑크푸르트의 작은 건물에서 지금은 한국관광객들이 독일의 공예품을
사오기에 바쁘다는 건 너무한 일이지 않은가.

이 작은 건물에서 일어난 사실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경상수지가
어떻게 적자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올해 중소기업의 수출실적은 10월말 현재까지 4백68억달러로 비교적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10만개 중소기업의 수출실적은 아직 7개종합상사의 수출
실적에 5백44억달러에 비해서도 크게 뒤진다.

물론 수출품목을 살펴보면 컴퓨터부품 자동차부품 등으로 상당히 첨단화
됐다.

그러나 중소기업도 수출을 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옛날의 열정만큼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독일의 라인강변 포도주명산지에 있는 와인가게에 놓아둔 나무뿌리손잡이
오프너는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한국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독일산으로 대체돼있다.

사흘뒤면 제 34회 무역의 날이다.

10년전 또는 20년전의 무역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요즘
우리의 수출열기는 꺼져가는 불꽃같다고 느낄 것이다.

이제 IMF로부터 굴욕적인 간섭을 받기 싫다면 다시 수출열기에 불을
지피자.

고양이 가죽은 더이상 팔기 어럽겠지만 인공습식 피혁이라도 만들어 세계
시장으로 뛰어나가자.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