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자가용차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분의 얘기를
듣고 당시 대학에 다니던 우리들은 대단한 뻥튀기라고 웃곤 했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씀이 있은지 채 20년도 못되어 우리는 자동차시대를
맞이했다.

요즘 경제의 어려움이 있지만 매우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 자동차 문화는 우리에게 많은 편의를 주지만 한편으로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씩 경험하는 일이지만 차들이 밀려 있을 때 잠깐동안 한눈을 팔면
옆차가 끼어들고, 서로 빤히 쳐다보면서도 단 한번의 양보해달라는 손짓도
없이 코부터 밀어대며 비집고 들어오는 예도 있다.

심한 경우 뒤에는 줄줄이 차들이 밀려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자와
차에서 내린 사람이 한동안씩이나 얘기를 주고받는 얄미운 경우도 있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차를 빨리 빼달라고 얘기했다가 남의 사정을 조금도
몰라주는 융통성없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밖에 모르는 "맘대로"의 행동인데 그 사람은 오히려
내가 융통성이 없다고 반박하는 것을 보고 "맘대로"와 "융통성"의 차이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전자와 후자 모두 불특정다수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하지만 그것을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는 데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인식차이는 다른 곳에도 많이 퍼져 있는 것같다.

그 한 예가 토지이용이 아닌가 한다.

산업과 생활기능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서 쓰자는 취지에서 토지이용을
구분하고, 농지는 농사를 짓는데 쓰도록 하고 있다.

물론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농지도 있고, 특히 산지는 개발을 위해
이용하도록 개방되어 있다.

또한 공장용지로 지정된 공단이 포화상태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는 심상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당장은 땅을 싼 값에 살 수 있고, 땅값이 오르면 일시적 차익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토지공간은 값만 오른채 그대로인 경우도 적지
않다.

개별적으로 보면 "맘대로"해서 좋고 융통성이 있어서 좋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거나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다수의 다양한 사회적 편익을 위해서 만든 것이 기준이고 규칙이라면
"맘대로"를 포기하고 지켜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