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웅 < 산업1부장 >

불만의 계절이다.

정치도 경제도 온통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곁에 투영되고 있다.

한번쯤이라도 늦가을의 정취나 우수에 젖어보기에는 나라의 형편이 너무나
어렵고 어수선하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단 둘만 모여도 목청부터 돋운다.

정부와 정치인은 흔히 그 분노의 대상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쯤으로 꼽히는 그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수준은 과거 어느때에 비할바 아니다.

기업에 대한 불평의 수위도 만만치 않다.

방만한 차입경영이 요즘의 경제위기를 부른 중요한 요인이라는 이유 때문
이다.

물론 오늘의 상황이 있게된 책임은 선량한 국민이 져야 할 성질이 아니다.

국가를 리드해온 지도층의 실책은 아무리 추궁해도 할말이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지금 사방에선 분노의 한숨과 욕설이 공해처럼 난무해도 아무도
제어하질 않는다.

말릴 분위기가 아닌데다 또 시류가 그렇고 그렇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너도 나도 불평만 하고 남의 탓만 한다면 결과는 어찌 될까.

한반도의 북쪽은 "동토 공화국" 남쪽은 "한숨과 분노"의 공화국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아주 단순히 바라보면 우리 경제위기의 배경은 다름아니다.

기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잃어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고, 그래서 이익을 내지
못하는데 있다.

원인은 여러가지다.

무리한 차입경영은 그 첫번째로 꼽힐만하다.

그러나 차입경영의 주체라는 이유로 우리기업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할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그건 걱정스러운 일이다.

기업에 대한 국민의 애정이 식어버릴 경우 경제위기 돌파는 난망이다.

슘페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의 엔진을 가동시키는 주체는
기업이다.

그리고 기업인들이다.

한국기업인들의 남다른 "기업가정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난 몇십년간의
눈부신 경제적 "신분상승"을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기업들의 성장과정에 얽힌 스토리에서도 저돌적인 한국기업가 정신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울산만 허허벌판에 말뚝 몇개 박은 상태에서 그리스 선박왕과 담판지어
첫배를 수주해온 거짓말같은 얘기, 세계가 말렸던 반도체 산업에의 참여를
결행한 고독했던 싸움의 과정 등은 한마디로 "작은 신화" 그 자체다.

그들 기업인들이 당시 그 같은 대 사업을 결행하는 데에 필요한 충분한
자본이 있었을리 없다.

그래서 자기 주머니만 믿고 시작했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아마도 훨씬
더뎠을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기업의 차입경영은 어쩌면 숙명적인 선택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땅을 사고 공장을 지으면 값싼 노동력에 힘입어
적당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 부동산가격 상승과 인플레로 빌린
돈의 가치를 단시일내 커버할 수 있었던, 그런 시대가 너무 길었던 탓이다.

문제는 한국 특유의 이런 기업환경이 수년전부터 너무나 급속히 변했다는
데 있다.

대부분 기업들이 이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데다 정부나 정치권도
리더십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솔직히 그런 과정에서 일부 국민의 책임도 무시할순 없다.

우리는 그동안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대단한 부자가 된
양 착각해왔다.

그러나 솔직히 따져보자.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부잣집 아들과 대대로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 어떤날 함께 일류회사에 취직했다고 치자.

이들이 똑같이 월급을 한 2백만원쯤 받게 됐다고 똑같은 씀씀이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물려받은 재산없는 궁색한 집안 출신이었음에도 서구 어느 부자나라 못지
않은 현란한 소비문화에 익숙해진 책임은 우리국민도 함께 져야 할 대목이다.

지금 우리 기업들은 매우 어렵다.

피를 말리는 위기의 순간순간들을 맞고 있다.

여기서 더많은 기업들이 힘을 잃고 쓰러진다면 우리경제의 미래는 없다.

기업들이 잘못해온 점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잘못을 질타하고 미워하기 보단 그들이 펼치는
처절한 자구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야 할 때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