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경제는 고통스럽지만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태풍권에 들어섰다.

전체 임직원의 50%에 해당하는 3천여명을 줄이겠다는 한라중공업의 결정,
재경원의 대한종금 등 8개 종금사에 대한 외환업무 강제정리 등은 이를 분명
히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기아 한보 등을 비롯 올들어 경영난으로 대량감원을 단행한 회사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한라중공업의 감원은 이들 좌초된 부실기업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측면에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업환경이 극히 불투명한 데다 IMF의 강도높은 긴축 요구가 겹쳐 군살을
빼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들어서만도 한화그룹 현대자동차 등이 조직개편을 통한 인원감축을
단행했고, 다른 대기업그룹도 비슷한 작업을 추진중인 곳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종합금융회사의 외환업무 강제정리도 대대적인 금융기관간 통폐합으로
이어져 금융권의 대량 실업을 결과할 것이 명확하다.

금융기관간 통폐합유도는 IMF도 강하게 요구하겠지만 이미 정부도 확고한
방침을 굳히고 있고, 외환업무를 못하게 된 종금사 등의 경우 종전의 단자사
처럼 내국업무만 전업하는 형식으로 존속할 자생력도 갖기 어렵다.

고용감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고, 또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것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고통스럽다고 피할 수 없는게 경제현실이다.

회사가 살아남고, 나라경제가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달리 방법이 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정부통계로는 2.3%선이다.

그러나 국가경영컨설팅 전문업체인 미국 부즈 앨런&해밀턴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의 유보실업률(Pent-up Unemployment)은 9.3%에 달한다.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으나 외국업체 진출제한 등 각종 보호막때문에
실업이 유보된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얘기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시장개방 상태에서 기업이 살아 남으려면 "경쟁력없는
고용"을 그만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 된다.

국내 기업이 지금도 20~30%의 유휴인력을 갖고 있다는 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무의 진단도 개방된 경쟁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대량실업이 불가피
하다는 논리로 통한다.

정말 두렵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거품이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고 온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논리다.

이제 저성장-고실업의 고통은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을 어쩔 수 없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

제조업이건 금융업이건 구조조정의 진통은 큰 차이가 없을 것 또한
분명하다.

미국 등과 비교하면 두배이상인 부채비율, 절반이하인 생산성, 엄청난
부실채권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우리 경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볼 때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지만 정말 고통스러울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구조조정의 본질이란걸 내키지 않지만
인정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