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에 대한 소문이 너무 과장되어 대외 신인도
저하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다.

97년 9월말 현재 전체 은행의 회수의문과 추정손실을 합한 부실여신규모는
9조6천9백3억원으로 총여신에서 점유하는 비율은 2.1%이다.

그리고 같은 시점 현재 부실여신에 고정여신을 포함한 무수익 여신규모는
28조2천3백46억원으로 총여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2%로 96년말 현재 미국
의 1.2%는 물론 일본의 4.2%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부실채권의 규모도 문제지만 감독당국이 부실여신의 분류기준을 선진국에
비해 너무 관대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추측도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이유중의
하나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요주의여신은 3개월이상 연체여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자계상불능여신(non-accrual loan)과 같은 기준으로 분류
해야 한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자계상불능여신은 담보가 없는데 비해 우리의 요주의여신
은 담보가 확보되어 있는 사실상의 정상여신이나 신용상태 등으로 보아 사후
관리에 통상이상의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조기경보장치의 한 수단
으로 분류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97년9월말 현재 일반은행의 요주의로 분류된 여신중 3개월이상
연체된 여신규모는 1조6천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유럽제국에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부실여신 분류기준이
다소 관대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이나 유럽제국의 경우 연체기간 3개월을 중심으로 부실여부를
판정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와 일본은 6개월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금융문화를 갖고 있어 획일적인 기준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담보대출이 관행화되어 있는 국가와, 미국처럼 신용
대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국가에서의 연체는 회수가능성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담보대출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다, 특히 시설자금대출의
경우 대체로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원리금을 상환하는 관행에 비추어
6개월정도의 연체는 대출의 회수가능성이 그렇게 우려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신용사회가 잘 정착되어 있어 자신의 신용관리에 철저한 미국과
같은 국가의 경우 연체라는 사실만으로 회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우리의 고정이하의 여신은 미국의 무수익여신(non-current loan)과 구조
조정여신(restructured loan)을 합친 것이나 일본의 불량채권의 포괄범위와
대체로 유사하다.

일본의 경우 불량채권을 경영파탄거래처 채권, 6개월이상 연체채권, 이자
감면유예채권 및 경영지원거래처 채권을 합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여신중 법정관리대상 여신이나 산업합리화 여신 등과 같이
이자가 감면되고 상환기간이 유예된 여신은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므로
부실의 정도가 높은 별도의 기준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행은 미국이나 일본도 같다.

미국의 구조조정 여신은 차주의 경영악화에 따라 원리금 상환조건을 조정한
여신으로, 조정된 여신조건이 지켜지고 있는 한 정상여신으로 분류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도 이자감면 또는 유예채권은 불량채권 이외의 별도 기준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우리 금융기관이 발표하는 부실채권이 불신을 받고 있는데도 그간 금융
기관들의 회계처리 일관성과 명료성이 부족한데도 원인이 있다.

유가증권평가손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든가, 매매익이 발생하는 것만
골라 처리하여 이익을 부풀리든가 하는 등이 그 예이다.

이번 부실채권 정리기구에 의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것을 계기로 그간의
누적된 거품을 깨끗이 정리하여 재무제표의 진실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법정관리기업체, 임의관리기업체, 산업합리화업체의 여신 등 이자
감면과 상환기간이 유예되어 있는 여신은 적절한 할인율에 의해 현가로
할인하여 장부가치를 낮추는 동시에 그 차액은 과감하게 대손처리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구조조정을 위한 금융기관 실사가 진행되면 이와같은 조치는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다시는 외국 감독기관으로부터 우리 감독당국의 기준이 아닌 BIS기준으로
작성된 재무제표를 요구받거나 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이 우리 금융기관이
제출한 재무제표가 아닌 그들 나름대로 작성한 것을 토대로 신용을 평가하는
수모를 당해서는 안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금융기관들이 발표하는 부실채권이 불신을 당하고
있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작성하는 재무제표의 신뢰성이
낮다는 것이다.

부실채권은 따지고 보면 기업들이 발생시킨 것이다.

계열기업간 내부거래와 부의 이전이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재무제표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들은 잘알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기업집단에 대한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강제하는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

기업이나 금융기관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시장의 공정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회계처리기준을 가능한한 국제회계기준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