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11월 A그룹 비상임고문변호사인 K씨는 L회장으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았다.

내용인즉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에 관련된 L회장의 검찰소환일자와
심문내용을 빼내달라는 것.

K변호사는 즉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온 C검사장을 급히 수소문, 회장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정보를 귀띔받아 제공했다.

고문변호사는 K씨처럼 그룹 총수의 "법률그림자"로 활동한다.

일의 성격상 로비스트란 소리도 자주 듣는다.

판검사중 주요포스트를 두루 거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주로 "간택"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법률자문에 응하나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평소 구축해
온 인맥을 동원, "특수요원"으로 변신한다.

그렇지만 고문변호사의 역할은 "영향력"이란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법무팀이 해결할 수 없는 경우 이들의 식견과 안면이 자주 이용된다.

S그룹의 한 변호사는 "고문변호사가 법률이나 시행령을 바꾸는 첫 작업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고위층에서 어떤 법.시행령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고문변호사에게
자문요청이 들어간다.

고문변호사는 법조항의 위헌적 요소나 시행령의 법위반부분 등의 검토를
끝낸 후 대체입법의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고문변호사의 자문내용을 기초로 법개정방향이 정해지고 이때부터 기업들의
본격적인 로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고문변호사의 의견서는 로비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정 법률분야의 전문변호사의 법개정 의견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들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고문변호사를 확보해 두고
있다.

물론 고문변호사로부터 법률자문을 받는 경우는 고작 1년에 한두차례
정도에 불과하다.

그 댓가로 매달 50만~3백만원 정도의 "자문비"를 지급하는게 관례.

이런 고문변호사의 역할이 "예비군"에서 실무형으로 교체되는 경향이
눈길을 끈다.

LG그룹은 국내파가 아닌 김동인변호사를 상임고문으로 활용, 국제화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SK가 최혁배 변호사를 그룹법무의 안방을 맡긴 것도 같은 이유다.

현재 5대 그룹에서 활용하고 있는 고문변호사는 임원으로 채용된 상임고문
과 비상임 사외고문으로 나뉜다.

상임고문은 그룹 부사장급 이상의 대우를 받으면서 그룹 및 계열사 법무
업무를 총괄 지휘한다.

삼성그룹 윤영철 전대법관 인형무 전2군단법무참모부장, 한진그룹의 이태희
변호사가 대표적 상임고문이다.

비상임 고문변호사는 그룹별로 10~40명이 포진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그룹차원의 고문변호사를 별도로 두지않고 계열사별로 담당을
챙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대검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 등 검찰내 요직을 두루거친
김경회 변호사를 비상임고문으로 두고 있다.

LG그룹은 법무법인 세종 등 6개 로펌과 함께 김유후 전서울고검장, 2선의
전정구 전국회의원, 유길선 전대검강력부장 등 10여군데와 자문계약을 맺고
있다.

대우그룹은 법무법인 충정의 황주명 변호사가 국내외 통상사건을, 대검
특수부3과장 출신인 석진강 변호사가 형사사건일반에 대한 자문을 해주고
있다.

SK그룹에는 플랜트수출.외자도입 문제는 이기창 변호사, 노사문제는 법무
법인화백의 강보연 변호사와 주로 협의하며 대략 30~40명을 확보하고 있다.

< 김인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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