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상황은 다르지만 일본 금융산업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4대 증권사의 하나인 야마이치증권이 22일 경영난으로 대장성에
폐업을 신청키로 결정, 사실상 도산했다.

창업 1백년을 맞은 야마이치증권의 부채총액은 국내외 자회사, 관련회사
등의 부채를 합해 6조7천억엔(약 58조원)으로 추산, 2차대전후 최대규모의
도산으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 금융산업은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용조합 중소형은행의 도산에 이어 올들어서는 닛산생명 보험이 쓰러졌고
11월에는 산요증권, 일본 10대 도시은행인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그리고
야마이치 증권이 도산함으로써 세계 금융대혼란시대를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금융권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은 30조엔(약 2백60조원)인 것으로
대장성이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그 3배에 이를 것이란게 금융계의 추측이다.

일본 금융산업은 관치의 틀속에서 손쉬운 장사를 해오다 그 틀이 깨지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일본 금융산업의 혼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금융기관이 손쉬운 장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거나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때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마불사라고 했지만 이제 대기업이 무너지고 금융기관마저 쓰러질수
있다는건 외국의 이야기가아니다.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일본은 그동안 거품을 걷어내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빚어내지 못했다.

우리의 경우 현재 외환위기를 걱정하고 있지만 그건 실물부문에서의
경쟁력상실, 금융부문에서의 체질개선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내외를 비롯한 금융기관간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고, 이 과정에서
체질이 약한 기관은 도태되게 돼있다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금융개방이 본격화되면 국내 금융기관이라고 해서 국민이 선호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기 어렵게 됐다.

우리의 금융기관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으면서 체질개선이나
금융기관간 대대적 인수-합병(M&A)열풍이 일반화돼 있는 세계의 흐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줄어들고 있는 영역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이길수 없는 경쟁에 불과하다.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는 한 일본의 금융불안이 한국, 나아가 세계
금융불안으로 이어질때 우리가 설 땅은 없어진다.

일본이 우리 금융기관에 빌려준 자금을 조기 회수하거나, 우리가
일본정부에 요청한 지원액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금융기관이 매수해있는 미국 채권을 환매하기 시작하면
미국경제, 나아가 세계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이런 상황으로 번지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일 그럴 경우 우리가 설땅은
어디인가.

어떤 경우에도 경쟁력을 잃으면 더큰 치명상을 입는다.

우리경제는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와 다르며 근본적으로 건실하다고
우기는 것은 무모하다.

경쟁력을 키우는 일을 마다하고 시간을 낭비하거나 눈길을 딴곳으로
돌리면, 그리고 금융이 산업의 동맥이 되지 않으면 외환위기극복은 물론
경제발전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