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금융위기가
악화되자 금융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일반국민들의 불안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금융위기상황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다.

지난 20일에는 투자신탁회사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소동이
빚어졌으며, 서울의 주요 귀금속상가에서 금값이 하루에 10%이상 폭등하는
바람에 거래가 거의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국가적 위기앞에서 국민으로서 해야할 일을 찾기보다는 내몫 챙기기에
바쁜 모습은 선진국이 됐다는 지금도 전혀 달라진게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데는 정부와 기업의 책임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책임의 소재를 따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절박하다.

범국민적 협조가 없으면 도저히 극복할수 없을 정도로 위기의 골이 깊다.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고비를 넘긴다 해도 구제금융에 따르게 마련인
고통스런 의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한지 1년도 채 못돼 IMF에 구원을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까지 몰린 것은 분명 창피한 일이 아닐수
없다.

때문에 IMF의 자금지원을 "신탁통치"니 "법정관리"니 하며 자조적으로
확대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일만도 아니다.

외국의 예에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나라는 과거 IMF의 자금지원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할수 있었고 "IMF 모범생"이란 말까지 들었지 않은가.

결국 앞으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수도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가 발등의 불인 이 시점에서 국민이 당장 해야 할 일은 범국민적
외화소비 절약운동이라고 본다.

우선 무분별한 해외여행부터 자제해야 한다.

우리의 여행수지 적자는 연말까지 33억달러에 이르러 경상수지 적자의
25%를 차지할 전망임에 비추어 해외여행만 자제한다 해도 상당한 외화절감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다.

또 일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소액달러 은행 환전운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으로 외환위기 해소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국가위기를 재인식시켜 불필요한 해외여행과 유학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국병인 사치와 과소비를 억제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의 소비양극화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는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는
자포자기식 실망소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 해악이 너무나 크다.

조용하되 내실있는 근검절약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국민소득 1만달러의 선진국이 아니다.

이번 금융위기는 우리를 일장춘몽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교훈적이다.

국민 하나하나가 위기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고통분담에 나설 때에만
우리는 1만달러 고지를 되찾을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