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10시 중견전자부품업체 H사는 초비상이 걸렸다.

환율이 이날 개장 30여분만에 달러당 1백원이상이 올랐기 때문이다.

21일 수입대금결제를 위해 1천만달러를 매입할 계획이었던 이 회사는
앉은 자리에서 10억원의 손해를 보아야 했다.

진작 선물환거래를 해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때늦은 뒤였다.

이날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은 개장초부터 환율상승심리가 대세를
장악하면서 이날 매매기준율인 1천35원50전보다 1백3원50전 높은 1천1백39원
(상한선)까지 치솟았다.

환율상승에 따라 수출대금유입이 많은 기업들은 희색이 가득한 반면
수입결제및 외화부채 원리금상환이 대기하고 있는 업체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기업들이 장외시장에서 달러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금융기관 또한 달러확보에 혈안이 돼있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외환딜러들은 이날 환율이 환율변동폭(매매기준율 대비)이 종전 2.5%
에서 10%로 확대되자마자 단숨에 상승제한폭까지 오르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개장초 한때 매수세력과 매매세력간 탐색전이 벌어지는듯 했으나 환율이
개장 35분만에 1천1백39원까지 오르면서 "백약이 무효"라며 허탈한 반응들.

일정금액이상 손해가 났을 때 딜링을 중단하는 "스탑로스"나 계절별 수요에
대비, 수급의 완급을 조절하는 전통적인 딜링기법들이 무색해지면서 사실상
개점휴업상태에 빠져들기도.


<>.환율상승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체들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한전 삼성전자 등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일부기업들은 막대한 환차손소문이 나돌면서 주가가 하한가를
때리기도 했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무역업체들도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살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되자 거래은행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예상과 달리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있다.

모은행 딜러는 "정유사들이 그동안 달러를 꾸준히 사모아 뒀기 때문에
현재 보유달러만으로 이틀치 결제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화부족난에 시달려 왔던 종금사들도 부지런히 예비물량을 확보해둔
덕에 상당한 수준의 환차익을 올렸다.

현재 종금사들의 외환수급상황은 개별기관별로 각각 5백~2천만달러
롱포지션(공급초과상태)이어서 20일 하루에만 달러당 1백원이상의 차익을
올렸다는 후문.

그러나 보유물량이 고갈될 시점의 환손실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
이번에 올린 단기이익이 곧 상쇄될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기도.


<>.이날 은행의 환전창구는 상당히 한산한 편이었다.

환율이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르자 유학생부모 여행객등은 일단 환전을 자제
하며 관망하는 기색이었다.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한관계자는 "환전객이 평소의 절반에도 못미친다"며
"직원들도 경황이 없어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환전주문을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남대문시장일대의 암달러시세는 은행현찰매도율보다 낮은
1천1백원에 형성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재정경제원은 환율변동폭이 종전보다 4배나 커지자마자 20일 외환시장
에서 원.달러환율이 치솟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한 관계자는 "제도 변경에 따른 충격으로 참고가 될 만한 환율수준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라며 "달러를 가진 회사는 "잘못 팔면 손해"라고 생각,
달러매도에 소극적인데 반해 가격에 관계없이 반드시 달러를 구하겠다는
매수세가 여전히 너무 강해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

이 관계자는 "환율변동폭을 확대한 이유가 맹목적인 환투기에 대한 위험성
을 높이는데 있다"며 "단기적인 외자추가조달 전망이 어둡다는 판단에 따라
원화가치가 연일 폭락하고 있지만, 환율상승 기대감이 줄어들고 통화당국의
개입 재개로 불안감이 희석되면 달러투기세력의 손해가 커질수 있다"고
경고.

< 최승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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