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뒷골목에 가면 외국인전용(?) 실내포장마차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고객이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들어왔다가 이탈한 사람들인
이곳의 최고 단골은 필리핀인들. 필리핀임금 기준으로볼때 서울의 포장마차
술값은 만만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과감히 각종 구이를 시켜먹는다.

그만큼 이들의 주머니사정이 괜찮은 모양이다.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중소기업에 취업을 하면 월 2백67시간 근무기준으로
약 70만원선의 월급에 숙식을 제공받는다.

이에 비해 이탈자들의 경우 숙식은 자신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만
평균 1백10만원선을 받는다.

때문에 포장마차 또는 고급식당에서까지 식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됐다.

그러나 이들 불법취업인력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번돈을 본국으로
송금할 방법이 없다는 것.

산업연수생일 땐 회사에서 송금을 해줬으나 취업증명서류를 갖고 있지
않은 이들로선 송금할 길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전문브로커들이 이들을 유혹한다.

전문브로커들은 서울및 인천지역에서 작은 사무실을 차리고 사업자등록증을
활용, 송금을 대행해주고 높은 수수료를 챙긴다.

브로커들은 송금료만 챙기는 게 아니다.

매번 인력들을 더 나은 자리로 옮겨준다며 알선료를 받는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해외인력들의 임금이 갈수록 치솟을 수 밖에.

그럼에도 3D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선 급여가 문제되는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이들 불법인력은 써야 하는
처지.

이런 처지를 잘아는 브로커들은 업체에도 접근해 인력공급을 제안한다.

관주산업의 전태남사장도 최근 브로커로부터 제안을 받자 파키스탄 인력
3명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동안 방글라데시에서 온 인력 4명이 주물공장에서 일을 잘하는데 힘을
얻어 다시 서남아인력 구하기로 한 것.

그러나 이들 파키스탄인력을 공장에 배치하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동안 일을 잘해오던 방글라데시인들이 완강히 반발했다.

대립관계인 파키스탄인들과는 결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거였다.

전사장은 브로커에게 알선료만 날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전사장은 인력조달문제를 상담하러 기협중앙회에 들렀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산업연수인원중 이탈률이 35%에 이른다는 거였다.

더욱이 파키스탄인력의 이탈률은 54% 수준이란 걸 알게 됐다.

총 2천2백명이 산업 연수생으로 와서 1천1백89명이 이탈을 했다는 거였다.

그는 파키스탄 불법취업자들을 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물공장에서 일할 인력을 아직 구하지 못해 몹시 곤란해 한다.

지금까지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인력은 총7만8천8백18명인데
이중 2만7천4백85명이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이들은 산업연수생의 체재기한이 3년이어서 2년반을 넘기면서 어김없이
이탈해버린 것이다.

중국인력도 이미 43%에 이르는 7천9백17명이 이탈, 서비스업종등으로
사라졌다.

필리핀인력도 9천1백26명이 들어왔으나 4천명이 이탈했다.

성수동 포장마차의 단골들이 바로 이 4천명중에 속하는 사람들.

업계는 내년말이면 현재 연수생의 60%이상이 이탈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깊게 고려해보자.

하나의 제도가 만들어진 뒤 전체의 60%가 이탈한다면 그 제도는 정말
문제가 큰게 아닌가.

산업연수생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절실한 시점이다.

<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1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