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대다. 너도 결국은 헤어졌잖아? 왜 그랬어? 네 이론대로 라면
끝까지 살아야잖아? 너에게 묻고 싶은 문제다"

"얘, 너 요새 남편에게 불만이 많니? 그렇게 들리는데. 네가 바로 그
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긴 부부가 아닐까?"

영신은 신선하게 웃는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씨가 있다.

언젠가 은자에게 들은 소리가 있어서 였다.

"그녀의 남편은 사업에 성공했대. 그러나 술 때문에 부부생활에 빨간
불이 들어와 남편이 일본 여행에서 섹스기구를 사다줬대. 한참은 오히려
남편보다 나았는데 오래 되니까 그것도 싫증이 나더라 이거야. 그래서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연애를 하라더래. 그러나 모두 자기 남편만
못하더래. 그래서 남편이 알콜 클리닉에 들어가 지금운 알콜에서 깨끗이
헤어났는데, 물질적 풍요 다음에 오는 일반적 사회현상이 바로 우리가
겪는 이런 거다 이거지"

이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영신은 내색을 안 한다.

"영신아, 아침부터 너무 수다를 떨었다.

다음 12일이 동창회날이니까 꼭 와. 그래야 재미있는 소문도 듣구.
지난번엔 네가 안 와서 너무 서운했어. 그럼 12일 한시다. 봉래옥 냉면집.
알았지? 꼭 오는 거야"

그녀들의 통화가 다 끝날 때까지 김치수 회장은 가장 적나라한 요즘
딸 세대의 고백을 돈 안 들이고 도청했다.

김치수는 요새 영신과 점심을 같이 먹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니까 영신은 아버지와 점심만 같이 먹고도 효녀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팔자 좋은 외동딸이다.

영신은 골프장으로 전화를 넣기로 한 약속이 생각나서 멀리 있는 오케이
골프장으로 017을 날린다.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며 커피숍에서 쉬고 있던 지영웅이 통화가 되자
마자 볼부은 소리를 한다.

"내일이 시합날인데 오늘 나와 점심을 같이 먹는게 도리가 아닐까?"

"자기 미안해. 그러나 나만 보면 고추가 춤을 춘다며. 하하하하"

그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크게 웃어서 커피숍의 아가씨가 깜짝 놀란다.

그들은 웃음이 저절로 그칠 때가지 웃음보를 마냥 터뜨린다.

"스톱! 옆의 사람들에게 폐가 되겠어요.

나는 그대의 성난 고추가 무서워서 그대 옆에 못 가요.

성이 나서 나를 물 것 같아"

"타이슨처럼 물어버리면 피를 흘릴 거야. 나의 보물은 요새 도사처럼
점잖게 프로 따는 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진감래라, 쓰디 쓴 고행 뒤에 달디 단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나는 아빠를 따라가서 맛난 것을 잡수시도록 기분을 돋우어드리며
효도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당신에게 줄 상금을 세이브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나에게 큰 무역회사를 설립할 자금을 주시기로 했어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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