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마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한창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영혁신의 1단계 조치이자 핵심과제인 인력 슬림(slim)화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적인 제약 탓이다.

전문가들은 유휴인력을 내보낼 수 없고 비핵심부문 인력의 아웃소싱
(out-sourcing)이 막혀있는 상태에서 기업들의 경영혁신은 변죽만 울릴
뿐이라고 지적한다.

인력의 "드나듦"을 어렵게 하는 규제의 실태와 개선방안을 모색해 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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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는 최근 40명 가까운 임원을 해고했다.

내수시장의 침체 등 경영환경의 악화를 타개하기 위한 비상수단이었다.

어떻게든 회사의 덩치를 줄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고육지책이었지만 이
회사는 실질적인 인원감축의 효과는 거의 보지 못했다.

정작 줄여야할 생산라인의 근로자들은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A사가 생산직 근로자들이 과다하게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앓이만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
이기 때문이다.

B사는 지난해 명예퇴직을 단행하며 3분의1에 가까운 인원을 줄였다.

1천여명 가까운 직원들을 내보냈지만 감원의 효과는 아직 별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

1인당 최고 5년치의 월급을 지급했던 퇴직장려금이 아직까지 부담이 되고
있어서다.

최근 기업들이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하고
있지만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데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경직된 고용구조는 기업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

위태로운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선 감량경영이 필수적인데도 법적 제약과
노조의 반발에 부딪쳐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문을 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고만 어려운게 아니다.

채용도 마음대로 못한다.

단순기능직의 경우는 얼마든지 파견근로자나 계약직 사원을 고용하면
인건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

안산의 C사의 경우가 좋은 예다.

운전직과 경비직 사원을 생산직으로 전환시키고 여기에 파견업체의 근로자
를 채우면 40%의 경비절감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이 회사는 두달여의 실랑이
끝에 이조치를 포기하고 말았다.

"불법파견업체의 근로자를 고용하면 고발하겠다"는 노조의 강수에 밀린
것이다.

줄이지도 못하고(정리해고) 싼 인력을 쓰지도 못하니(근로자파견금지)
기업들의 구조조정 노력은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다.

경남 창원의 D중공업을 보면 이는 더욱 명백해진다.

지난 여름내내 아침이면 수십명의 근로자들이 모여 공장 인근 잔디밭 풀을
뽑았다.

도심지의 취로사업같은 풍경이 시작된 것은 이 회사가 대대적인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하면서부터다.

이 회사 D사장의 복안은 사업부별로 적정인력만 남기고 유휴인력은 신규
사업에 돌리거나 내보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노조가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않은 인력재배치는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나왔고 해고를 하면 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나와 마찰이 빚어졌다.

덕분에 애꿎은 근로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소일거리로 풀만
뽑아야 했다.

기업들은 경영혁신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런 웃지 못할 현상이 노동시장에
대한 지나친 규제 탓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 등 노무관리를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에 맡기자는
겁니다. 국내 노동시장은 인력이 없거나 많아서가 아니라 배치가 잘못돼
있는게 문제입니다. 노동시장의 원활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기업은
영원히 뒤처질 수 밖에 없습니다"(경총 김영배상무)

기업이 종업원을 한번 고용하면 끝까지 책임져주는 종신고용제는 잘만
운영되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제도다.

근로자는 신변에 대한 불안없이 마음놓고 일에 매진할수 있고 회사측도
그에 상응하는 충성심을 요구할수 있어 강력한 회사발전의 모티브로 작용
한다.

그러나 경영이 어려울 경우에 엄청난 부담으로 회사를 짓누르게 되는
단점도 있다.

이에따라 종신고용제의 본산이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 기업들조차 불황을
겪으면서 최근에는 계약직을 늘리는 등 고용제도를 크게 바꿔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용문제에 관한 각종 경직된 규제들을 시대흐름에 맞춰 보다 유연한 형태
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 이영훈 기자 >


[[[ 각국 정리해고제 현황 ]]]


(자료 : 전국경제인연합회)


<>.일본 : 관련법 없고 판례를 통해 요건 정립

<>.대만 : * 휴업/양도 * 적자 또는 사업규모 축소
* 사업변경시 정리해고 가능

<>.싱가포르 :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고용계약 종료

<>.미국 : 계약자유의 원칙에 의해 일시해고(lay-off) 일반화,
1백인 이상 사업장은 일시해고시 60일전 근로자 및 주정부에
사전통보 의무

<>.독일 : 해고제한법 제1조에 경영상의 사유에 의한 정리해고 인정

<>.프랑스 : ''진실하고 중대한 이유''가 있을 때 정리해고 가능

<>.영국 : 특정작업, 직무가 중단될 때 관련 인원 정리 가능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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