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엉뚱한 실수로 큰 물줄기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렇게 안했더라면 하고 후회해봐도 쓸데없는 가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1990년 후세인의 쿠웨이트침공으로 비롯된 이라크사태도
기네스북이 선정한 세계사의 대실수가 되었다.

그해 6월25일 이라크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1주일전, 바그다드의
이라크 미국대사 에이프릴 글래스피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중에 후세인은 글래스피 미국대사로 부터 "미국은 쿠웨이트와의
분쟁같은 아랍권의 분쟁에는 아무 의견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실수였다.

미국은 쿠웨이트를 침공할 자신의 군대를 다시 쫓아내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후세인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는 이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정도로 느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즉각 쿠웨이트침공을 명령했다.

글래스피 대사의 말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에 대한 허가장이나 다름
없었다.

외교전문가들은 세계 최강국의 대사가 어떻게 그처럼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 의심하고 있다.

대사가 말 실수를 했거나, 너무 흥분상태였거나, 아니면 가벼운 담소
정도로 여겼거나 상관없이 그 결과는 세계사의 큰 재앙이 되었다.

글래스피 대사는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옳았다.

후일 대사는 "우리는 당신이 쿠웨이트와의 분쟁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기를 강력히 주장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기록되어있지 않으며 당시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믿는 사람도 없다.

그때 미국은 이라크에 우호적이었다.

호메이니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후 이란만이 적이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이란과의 전쟁때 이라크를 지원하여 또 하나의
호랑이를 키운 것이다.

이런 처지였기 때문에 글래스피 대사는 후세인과 어물어물 대화했는지도
모른다.

최근 무기사찰을 둘러싼 미국과의 분쟁에서 무력대결을 원치 않는다고
후세인은 말했다.

이는 무력응징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결의때문이다.

역사의 교훈이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