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에 금긋기"

외국언론이 한국의 외환정책을 빗대 표현한 말이다.

환율방어선을 쳤다가도 금새 후퇴하고 마는 환율정책이 마치 모래밭에
금을 그었다가 물결이 밀려오면 뒤로 물러나 다시 금을 긋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정부의 줏대도 원칙도 없는 외환정책을 꼬집은 말이다.

실제가 그랬다.

외환당국은 지난달 하순까지만해도 "달러당 9백20원"에 방어선을 쳤다.

그러나 이도 잠시.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마지노선은 9백40원, 9백50원, 9백80원으로
속절없이 밀렸다.

급기야는 지난 11일 "달러당 1천원"까지 후퇴했다.

정부는 이때 "최후의 항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두고보면 안다.

어떤 일이 있어도 1천원은 고수할 것이다"(김석동 재경원외화자금과장)라는
출정사와 함께.

정부의 호기는 그러나 일주일이 채 안된 지난 17일 "항복선언"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오로지 수요만 있는 상황에서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쏟아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는게 백기를 든 사연(재경원 김과장)이다.

물론 정부의 외환정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시장상황과 경제환경이 변하면 환율방어선도 조정되는게 마땅하다.

그러나 외환당국이 보여준 태도변화를 시장상황탓으로만 돌릴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미 해외차입이 중단됐고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드러
내는 상황에서 지키지 못할 "방어선"을 연발했다.

이러니 그 방어목표를 시장참가자가 믿을턱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외환시장의 어려움을 솔직히 고백하고 이해를 구하는게
옳았다.

한은법과 통합감독기구설치법이 통과되야만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내놓겠다고
고집피울 것이 아니라 시장의 불안감을 당장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게 순리였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가래로 막지못할 정도로 키워놓다보니
"금융개혁법통과를 위해 환율을 고의적으로 상승시켰다"는 오해까지 받게
됐다.

정부가 19일 내놓을 안정대책이 또다른 "모래밭에 금긋기"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순간이다.

하영춘 < 경제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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