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정 < 헝가리어학과 2년 >

어문계 학생들에게 과학사란 과목은 너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박교수님의 과학사 강의는 이런 편견을 뛰어넘어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지금은 교양필수과목이 없어져 꼭 들어야 할 과목은 아니지만 박교수님의
과학사는 외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야하는 이른바
"외대필수과목"이다.

선배들로부터 익히 명성을 들어 1학년때 앞다퉈 수강하는게 보통이지만
시기를 놓친 2~4학년 청강생들로 늘 북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업 첫날 백발의 박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오자 완고한 첫인상 때문에
한학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박교수님의 강의는 어떤 젊은 교수님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고 재미가 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달변, 기존의 상식을 깨는 독설로
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따라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강의전에 지니고 있던 서양과학과 민족과학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리고 과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는다.

옛것은 모두 잘못되고 비과학적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오히려 옛것에서
합리성과 과학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교수님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 예로 달력에 표시된 24절기와 간지의 과학성과 활용법을 설명하신다.

24절기가 우리선조들의 지혜의 소산이며 과학적 합리성을 가득 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강한 민족적 긍지를 느끼게 됐다.

인문사회계열학문보다 기초응용과학을 배우는 사람이 늘고 사회적인 대접도
나아지는 요즘에 과학사 수강은 과학의 사회적 의미를 모르고 지나칠뻔 했던
나에게 이를 인식케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