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우 <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

조선시대 문민정치의 특징은 정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록을 열심히
남겼다는데 있다.

조선시대 기록유산중 실록은 걸작중의 걸작이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백성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건은
빠짐없이 일기체로 적은 것이 실록이다.

실록을 읽어보면 대하소설을 읽거나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조선왕조의 시대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실록은 소설처럼 창작된 기록이 아니라 엄격한 검증을 거쳐
편찬된 것이기에 진실성이 높다.

실록 편찬과정은 매우 엄격하다.

예문관의 관료는 사관의 직책을 띠고 국왕옆에서 매일 정사를 기록해 두는데
이를 사초라 한다.

춘추관은 관청마다 기록해둔 고유업무를 종합, 시정기를 작성한다.

왕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언행을 기록한 사초를 보는 것이 금지된다.

기록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왕에 대한 평가는 죽은 뒤에야 내려지는데 이것이 바로 실록이다.

실록청에 소속된 20여명의 관료가 사초와 시정기를 참고해 두번 수정해
확정한 원고(정초)가 현재 남은 실록이다.

실록 CD롬 제작을 계기로 이렇게 꼼꼼한 정사기술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