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와 본사가 공동 주최하는 제34회 경영자초찬세미나가
14일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렸다.

이날 연사로 나선 박승 중앙대교수의 강연내용을 간추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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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도산이 줄을 잇고 있다.

30대 재벌기업중에서도 이미 8개가 넘어졌다.

이들은 모두 조단위의 엄청난 빚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으며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도산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국제금융 위기까지 연계됨으로써 환율폭등 주가폭락
금리상승 등의 연쇄작용이 휘몰아치고 국가신용도는 추락하고 있다.

소위 구조적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 경제위기는 어떤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가.

버는 힘은 약해지고 쓰는 힘은 커지는 저생산 고지출의 형태로 나타나
위기요인이 생산과 지출 양면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경제체질의 산성화 또는 노화를 의미하며 흔히 이것을 버큼현상이라고
부른다.

먼저 생산쪽에서 보면 고비용현상으로 인하여 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

지난 10년간 임금상승률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은 30%인데 우리나라는
2백40%에 이르러 10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저임금.저비용국에서
고임금.고비용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음으로 국민지출쪽에서 보면 과지출로 인한 적자경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있는데도 민주화와 개방화에 따른 욕구분출과
고임금이 바탕이 되어 과소비를 불러왔다.

우리 경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의 위기국면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그러면 현 경제위기는 과거의 위기와 비교할 때 무엇이 다른가.

첫째 현재의 경제위기는 산업위기가 금융위기로 직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산업합리화법을 만들어 부실채권의 상당 부분을 조세감면 등의
방법으로 정부에서 흡수해 주었다.

나머지 부분은 은행의 예대마진이 높았기 때문에 은행에서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을 때에는 한은특융 또는 1972년의 8.3사채동결 조치와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부실 규모는 수십배 수백배로 커졌는데 정부는 이것을 전부 금융기관에
떠 넘겨 금융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시장기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기관은 개방물결 때문에 예대마진도 낮아져 스스로의
몸가눔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업도산은 금융기관의 도산을 불러 올 것이 뻔한 일이다.

은행이 부도를 막으려고 신규대출 중단, 기존대출 자금 회수,
보유증권매각으로 대처하게 되니 이것은 다시 기업의 연쇄도산과
주가하락으로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국내적 경제위기가 국제적 금융위기와 직접 연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개방화 물결은 세계 경제력을 보호지역인 아시아로부터
개방지역인 미국으로 이전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유럽은 그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경제는 지금 장기호황을 누리고 있고 아시아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는 근본대책은 무엇인가.

기본과제는 거품을 제거하여 경제활력을 되살리는 일이며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과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고비용.저능률 구조를 시정하여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기술혁신은 문제해결의 적극적인 방법이지만 이것은 장기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다른 하나는 과소비를 시정하여 적자경제를 흑자경제로 바꾸는 일이다.

이 어려운 두가지 과제를 성취시키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불황이며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다.

불황이 되면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이 발생하여 임금이 동결되고 소비가
줄게 되며, 물가가 올라도 실질임금과 실질소비가 깎여 내려가게 된다.

통상적으로 이 두가지 방법은 상호보완적으로 함께 작동하게 마련이며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러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민.기업.정부 모두에 고통스러운 감량과
내핍을 요구하게 되며 그런 점에서 이러한 정책을 감량 내핍정책이라고 한다.

경제정책은 저성장을 감수하고 안정을 우선해야 하며 재정은 긴축해야
한다.

기업은 감량경영을 단행하고 생산성혁신 내실경영 합리화를 실천해야
한다.

근로자는 임금을 동결하고 노동쟁의는 자제해야 한다.

가계는 소비를 긴축하고 더욱 근검절약 해야 한다.

이러한 감량내핍정책은 적어도 3년정도,그러니까 99년까지는 일관되게
지속되어야만 구조조정이 실효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시장기능에 맡기는 정책기조는 옳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위기관리적
차원에서의 정부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과도기적인 대책으로서 두가지를 지적할수 있다.

먼저 부실기업이 계속 나올 것인데 이들 부실기업이 시장기능에 의해
원활하게 정리될수 있도록 인수합병을 촉진시켜주는 가칭 "산업조정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 법에서는 인수합병에 따르는 특별부가세 법인세 등 제세공과금의 감면,
대기업 출자제한의 예외인정,부실채권 처분에 있어서의 정부지원(예컨대
기금활용 등)을 포함할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큰 문제로 제기될 것인데 이에대한
과도기적인 응급지원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금융개방 속도의 조절, 예대마진의 확대조치, 한국은행의
특융확대, 금융기관의 내실화를 위한 합리화 혁신과 자구조치 등을 포함할수
있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게 되면 우리 경제는 국제경쟁력을
되찾고 지난날의 활력과 고도성장을 회복할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경제는 성장이 꺾일 것이며 노동 집약재는 중국에,
기술집약재는 미국과 일본을 당해 낼수 없을 것이다.

물가는 비싸고 살기는 어려운 "저성장.고물가.

저생활국"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틀을 다시 짜는 경제개조의
대개혁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1) 자유와 개방경쟁의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조직의
축소개편, 예산구조와 세제 전면개혁, 정부규제제거, 의료보험의
통합화 등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2) 강력한 중앙은행제도의 도입, 금융전업인에 의한 은행소유,
금융자율경쟁과 내실화를 위한 조치 등을 포함하는 금융개혁
(3) 노동시장에서 고용과 해고에 대한 자율경쟁을 유도하고 노동시장을
자유화 유동화하는 노동시장 개혁
(4) 기업의 선단식 경영체제에 대한 개선, 차입 의존적 경영체제 단절을
위한 조치, 소유와 경영의 세습단절을 위한 조치 등 기업풍토 개혁
(5) 지가안정을 위한 보유과세 강화 등의 필요조치, 교통난과 주차난
환경난의 타개대책, 교육의 민주화 정상화를 위한 개혁, 수도권
집중억제와 국토균형개발을 위한 조치등 사회간접비용 절감을 위한
대책
(6) 의식구조 선진화와 생활 합리화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와 국민운동
(7) 저비용정치 합리정치를 구현하는 개혁과 정경유착 단절, 집단주의적
정치포화의 시정조치 등 정치선진화 개혁이다.

이러한 국정의 일대혁신 조치를 추진하기 위하여 새해에 출범하는 새정부는
대통령 직속하에 가칭 "국민개혁위원회"를 두어 그러한 개혁을 주도하도록
하고 위원회는 주제별 팀제로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