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엔지니어링산업이 태동한 것은 지난 60년대 초반부터이다.

전엔지니어링이 국내최초의 엔지니어링업체로 55년 설립되었지만 당시의
국내시장은 벡텔, 플루어다니엘, 파슨슨 등 미국업체가 독점하다시피했다.

63년 마련된 건설용역사업자관리규정에 따라 등록한 4개의 업체를
중심으로 플랜트건설에 부분적으로 참여,시공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73년 기술용역육성법의 제정을 전후해 대기업그룹사를 중심으로 한
엔지니어링 전문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74년에는 대림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이, 76년에 대우엔지니어링,
78년에 LG엔지니어링이 세워졌으며 삼성엔지니어링도 70년 정부시책에
따라 설립된 코리아엔지니어링을 78년 인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81년 기술용역법이 개정돼 "국내에서 발주되는 엔지니어링사업은 등록하고
있는 업자를 주계약자 또는 사업관리자로 지정한다"는 것이 의무화되면서
국내 엔지니어링산업은 착실한 성장기반을 닦았다.

이 시기를 전후해 해외프로젝트수주가 급증, 84년께까지 소프트부문만
연평균 1억달러를 헤아렸다.

90년대에 접어들어 기술용역육성법이 엔지니어링진흥법으로 개정되면서
국내 엔지니어링업체는 설계 기자재구매 시공등 전사업과정을 포괄적으로
책임수행하는 종합엔지니어링업체로 자리잡았다.

플랜트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시공관련조직을 보강하는 등 화공 발전 환경
일반산업플랜트를 중심으로 한 턴키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했다.

91년 대림이 태국 TOC사로부터 당시까지의 국내엔지니어링업체 수주사상
최대규모인 5억달러규모의 올레핀플랜트 건설프로젝트를 따내는 등
국내엔지니어링산업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졌다.

92년에는 해외수주액이 6억3천6백25만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의 영업 및 사업수행능력을 토대로 급성장 추세를 이어갔다.

현재 품질 가격 공기의 최적화 등을 무기로 선진업체와는 가격으로
경쟁하고 후발업체와는 품질과 기술로 승부하며 매년 30~50%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 국내 엔지니어링산업 발전과정 ]]

<> 태동기(55~72년)

* 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공업화과정에서 관련산업의 필요에
따라 부수적으로 형성
- 민간업체 4개사, 정부주도업체 2개사 설립
* 국내 엔지니어링산업 육성을 위한 대통령지시(69.5)

<> 성장기(73~81년)

* 그룹주도 엔지니어링회사 설립 : 현대(74) 대림(74) 대우(76) LG(78)
* 기술용역육성법 제정(73) 기술용역대가 기준 공고(75)

<> 발전기(82~92년)

* 산업설비용역업체들의 시장창출 노력과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엔지니어링산업이 국내 경제발전에 차지하는 비중 제고
* 해외수출 금액 1억달러 초과(90)
* 기술수준 대폭향상 : 상세설계, 기기 조달은 자립수준도달

<> 도약기(93~)

* 기술용역육성법을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으로 개정(93)
- 엔지니어링업체 설립이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전환
* 과학기술혁신 5개년 계획 수립,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 제정(97)
- 엔지니어링기술 등 10개부문 기술개발과제 도출
* 플랜트엔지니어링업체를 중심으로 해외 대형 석유화학 및 발전 플랜트
턴키 수주 확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