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근 <한국수출아카데미 대표>



심각한 위기에 빠진 우리경제를 살리자는 해법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기극복의 돌파구로
제시했다.

온나라가 벤처 신드롬에 빠져있다.

지방은 지방대로 테크노 파크를 짖는다, 선택된 입주자들에게 월세도
안받고 기술개발에만 전념토록 하겠다, 코스닥시장을 통해 자금조성의
길을 열어주겠다.

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테크노파크가 없어서, 벤처 빌딩이 없어서 기술개발이
안되고 세계적 발명품이 안 나왔나.

그렇다면 그 많은 대학의 연구소와 정부출연 연구소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모델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형태라 할 것
같으면 창의적인 개인이나 집단에 신제품 연구에 전념할수 있는 제도적
환경과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되어야지, 없는 국가예산 짜내어 공단건물만
거창하게 지어놓고 획일적 프로그램으로 통제 조절하는 곳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실리콘밸리의 특성이 미국 정부의 어떤 계획된 프로젝트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대한 공단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창의적 젊은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어 첨단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 교제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러다가 배짱이 맞는 사람들끼리 창업도 하고 하는 가장
리버럴하면서도 또한 신기술에 관한한 강자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일등 기술, 일등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꿈많은 이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곳이 스탠퍼드 대학이다.

스탠퍼드 대학 자체가 이 지역에서 가장 특허를 많이 가진 성공적
기업군이다.

특허로 인한 1년 수익금이 30억달러가 넘는다.

산-학협동의 가장 성공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막대한 연구비가 지불되고 있는 대학과 각종 연구소의 창의적
아이디어나 연구결과가 사장되지 않고 산업화로 직결될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려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학도 24시간 불을 밝혀 창의적 벤처 동아리나 연구집단들을 수용하고
편의를 제공하여 최첨단 기술이 개발되어 세계적 상품들이 쏟아질수 있도록
대학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

벤처캐피털만 해도 어느정도 기술이 궤도에 오른 벤처기업만이 심사를
받아 융자를 받거나 코스닥 시장에 상장될수 있는 현실이지만 초기 기술개발
단계에서 종자돈이 필요한 수많은 모험가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앤디 그로브, 엘리슨, 데이빗 패커드 등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은 이점에 착안하여 개인의 창업에서 종자돈, 기술지도,
인적관리, 경영노하우, 법률자문까지도 맡아 하는 패키지 캐피털(Package
Capital)로 후배들을 키워주며, 회사가 성장하여 상장된 다음에 주식으로
받아가는 기업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돈을 넣어주었다가 잘되면 빼가고 안되면 담보설정으로 빼가는 우리의
벤처기업자금 문화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첨단국가 미국은 아직도 제조업이 왕이다.

제조업 따로 있고, 벤처기업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어떤 품목에서건 시장을 제패할 수 있는 뛰어난 상품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이 곧 벤처 상품이다.

정보통신이 앞으로 유망하다고 해서 그곳으로 몰린다거나, 그 품목만이
21세기를 제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소란을 피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보통신의 꽃이라 부르는 인터넷을 통해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은 전세계 교역의 3%에 지나지 않는다.

97%가 재래식 장사방법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더욱이 어려운 우리의 경영여건에서는 현존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육성발전속에 벤처기업의 꽃을 피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두가 균형감각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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