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학 센터 소장 장필화.

굵직한 직함이 내걸린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대(?)와는 달리 마냥 푸근한
웃음이 기다리고 있다.

넉넉한 첫인상에 나즈막하고 정감어린 목소리.

그저 맘씨좋은 이웃집 아주머니같은 이가 바로 한국 여성학계의 "거물"
장필화 교수다.

이화여대 영문학과 70학번.

졸업후 사회단체에서 일하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을
몸서리치도록 절감했다.

여성학의 이론적 토대를 쌓아야겠다는 절실한 각오를 품은게 이때.

곧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석.박사를 마친후 83년 모교로 돌아왔다.

70년대말 한국 최초로 여성학을 개설한 이화여대는 당시 척박하기
그지없는 토양에서 여성학의 싹을 틔우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오로지 여성학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았다.

한국 여성학 산실로 자리잡은 이화여대의 오늘에는 그의 발자취가 뚜렷이
남아있다.

"뭐니뭐니해도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급선무지요.

여성들 스스로도 인식조차 못하고 정해진 각본대로 연기하는데 익숙해져
있는걸요"

그가 들려주는 지하철 사건은 각본바꾸기의 조그마한 실천사례.

여성학과 모 선생님이 출근길에 이른바 치한을 만났다.

등뒤로 다가오는 소름끼치는 비릿한 숨결.

이경우 대부분 여성들은 아무소리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떤 자식이 남의 히프를 만져!"

뜻밖의 응전에 치한은 얼굴이 벌개진채 도망쳐 갔다.

물론 그래서 뭘 어쩔 것이냐는 비난도 있다.

대안도 없고 발전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한다는 비판.할말은 많다.

"태동한지 20년도 안된 학문입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역동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학문도 많지
않아요"

지금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저력을 다지는 단계라는게
장교수의 주장이다.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다면 제 수업은 1백% 성공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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