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춘씨는 얼핏보면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다.

보험회사(한덕생명)의 전산관리직에 종사한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그의 모습은 1백80도로 돌변한다.

"주위에서 요즘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30대에 무슨
붉은 악마냐고요. 일종의 "나이값을 하라"는 무언의 충고지요. 그러나
이것은 체면을 중시하는 잘못된 우리 관습 때문입니다. 축구 사랑에 나이가
필요합니까"

붉은 악마의 고문을 맡고 있는 유씨는 자칭 신세대이다.

적어도 축구장에서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붉은 악마와 하나가 돼 응원에 몰입하다 보면 나이가 필요없다.

유씨의 축구사랑은 벌써 30년이 지났다.

걸음마를 뗄때부터 좋아하게 된 축구가 지금은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유씨는 다분히 철학적이다.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철학을 수반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유씨는 축구를 통해 우리사회를 바라본다.

뒤처진 삶의 문화를 지적한다.

"못하면 서로 욕하고 헐뜯는 경기장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응원단은 경기장에서 12번째 선수입니다. 그런만큼 선수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죠. 이것이 바로 붉은 악마의 정신입니다"

붉은 악마의 건강성은 바로 유씨와 같은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씨는 며칠 있으면 태어날 아이와 함께 축구 경기장을 찾는게 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