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가수" 김용(37)씨.

귀순한후 직장인 가수 연극배우 유치원이사장 등 전전한지 6년, 전에 살던
곳과는 다른 이질적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탈바꿈 기간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제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있는 평양냉면집 "모란각"의 어엿한 "사장님"이다.

본점과 분점을 합쳐 9개에 직원수만도 2백명을 넘는 중소기업이다.

김씨에게 냉면은 "호구지책"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고향의 맛이 짙게 배어있는 냉면에서 북녘에 두고온 어머니와 형과
누나를 생각한다.

직접 육수를 끓이고 맛을 보는 것은 그래서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그만의
도리이자 책무다.

통일이 되는날 가족들과 상봉할때를 그리며 하루 24시간을 금쪽같이 쪼개
산다는 김씨.

"천원짜리 한장이면 우리 누나 한달 산다"는 표어를 벽에 붙여놓고 사는
그에게 연예인의 화려함보다는 치열하게 삶을 사는 생활인의 모습이 더
강하게 각인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방송출연을 위해 마포의 한 프로덕션에 나온 그를 만나 마음속에 담겨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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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난 사람 = 문희수 경제부기자 ]]

-세번째 출간작인 "너무 외로워서 혼자사는 남자"에는 짙은 향수가 깔려
있더군요.

책을 만든 동기는 무엇인지요.

""머리빠는 남자" 등 앞서의 두책은 남북간의 언어나 생활방식의 차이같은
얘기를 주로 다룬 반면 이번책은 자서전의 성격이 강합니다.

한국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것과 힘들게 살아온 얘기, 그리고 이제까지의
결실같은 내용을 담았죠.

그리고 귀순자 동생들을 얻은 얘기, 그들의 형님이나 선배로서의 역할 등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정리했죠"

-책에서 보면 귀순생활에서 느낀 사회분위기와 귀순자들에 대한 처우 등에
대해 불만스러운 점도 많은 것같더군요.

"다소 과장됐던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사실 귀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장차 가족들과 만날 때를 그리며 "씨앗"을 가지고 오는 정도일뿐인데 막상
와보면 씨앗을 심을 곳조차 없어 막막한 실정입니다.

가족은 물론 친구도 없고 아파도 누구하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외롭기 짝이
없는 신세인데도 말이죠.

의지할 곳이라야 생활을 이곳저곳 돌봐주는 형사님들뿐인데 그나마 만2년의
보호기간이면 끝입니다"

-정부차원에서 정착금이나 직장알선 등 상당한 배려가 있지 않습니까.

"제 자신도 직장에 다녀봤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승진도 안되고 승진이
되더라도 허울뿐이고 이부서 저부서 옮겨다닐뿐 정착할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귀순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가리는 것은 아닙니다.

힘든 일이라도 애써 일해서 돈을 벌어 자신 때문에 재산을 차압당하고
수용소에 북녘의 끌려간 식구들을 돌보겠다는 것이 공통된 꿈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다른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요.

"공짜를 바라는것이 아닙니다.

"꽃송이"말고 "꽃씨"를 줘야 한다는 말이죠.

살아갈 방도와 수단이 문제입니다.

망치를 주고 못을 쥐어주어도 좋으니 보수가 많은 일을 맡기면 좋겠다는
얘기입니다.

5년정도 걸리면 정착할수있거든요.

통일이 되면 다른 것보다 귀순자 한명이라도 "나는 이렇게 살아서 성공했다.

자본주의란 이런 것이다"고 증언하는 것이 동질화를 위해 훨씬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겠어요"

-귀순생활 6년째에 냉면집 사장이 됐으니 완전히 정착했다고도 할수
있겠는데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믿었던 사람에게 속았을 때였죠.

2년동안 모았던 돈을 사기를 당해 한순간에 날렸던 것이 가장 큰일이었지만
그밖에도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문화유치원 이사장을 맡기도 했는데 유치원을 어떻게 해서 구상하게
됐나요.

"예전에 한 방송프로를 녹화하다 20평정도밖에 안되는 유치원에 수십명의
애들이 노는 것을 보고 이런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러다 일산에 들르게 됐는데 넓직한 곳들이 많아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얼떨결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어머니들의 과잉보호도 간단치않고 정작 운영도 어려워
결국 남에게 넘겨주고 말았어요"

-가수로 독집앨범을 내고 밤무대도 한때 섰다가 책도 출판하고 유치원도
경영해보다가 이제는 냉면집 사장까지 많은 일을 거친 셈인데 결국 사회
적응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죠.

귀순자가 이질적인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만 해도 귀순한후 후회한 적도 없지 않았어요.

오지 않아야 할길을 온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도 많았구요.

몇날을 울며 지새기도 했죠.

연예인생활을 하다가 한때는 삐삐요금도 못내 독촉장까지 받은 적도
있어요"

-평양냉면집은 성업중이라지요.

"일산 본점 외에 여의도와 송파 도곡동 상계동 분당 경기도 양평 포항 등
분점이 8개나 됩니다.

직원도 2백명이 넘죠.

앞으로 부산 대전 수원 등에 10개를 더 낼 생각입니다.

미국에도 뉴욕 시애틀 등 네곳, 일본에는 도쿄와 오사카 등 두곳에 분점을
낼 계획입니다.

모두들 도와주신 덕분이죠.

다른 먹을 것도 많고 서비스가 좋은 곳이 많은데도 냉면을 들기 위해
한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 분들을 보면 한핏줄.한형제라는 것이
실감나요.

"빨리 평양가서 (냉면을) 먹고 싶다"고들 말씀하시는 것은 곧 제자신뿐만
아니라 동생들 실향민들, 그리고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겠어요.

앞으로 가게를 "실향민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가게일이 바쁜 것같은데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보통 아침 7시에 일어나 집에서 1백m정도 떨어진 일산 본점으로 10시께
출근해 직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직접 육수도 끓이고 맛도 보고 직원들의 서비스자세 등에 대해 이것저것
지적한후 분점들을 돌아봅니다.

가게일을 마치는 시간이 밤9시30분이고 여기에 틈틈이 방송출연도 있고
해서 1주일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리죠"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셈인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사업이 첫째입니다.

남과 북을 잇기 위해 제가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거든요.

또 여유가 있는한 방송출연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외로워서 혼자 사는 남자"라는 책제목이 언뜻 떠올라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 사귀는 여자는 없느냐"고 묻자 김씨는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 즉답을 피했다.

옆에 앉아있던 동료 연예인에게 "사람좀 소개해달라"고 말머리를 돌리는
김씨의 표정에는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하며 육수를 끓인다"고 말할 때와는
또다른 외로움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