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선수는 허리가 튼튼해야 힘을 쓴다.

축구경기는 더 그렇다.

물론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허리를 삔 사람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한나라의 산업구조도 이와 같다.

허리가 약한 산업구조를 가진 경제는 경쟁력 씨름에서 질 수 밖에 없다.

산업구조상 허리에 속하는 부분은 바로 "중견기업"이다.

중견기업이란 보통 종업원 3백인이상에서 5백인이하의 업체를 말한다.

이들은 법규상으론 대기업에 속한다.

중소기업기본법에 3백인이하를 중소기업으로 정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 중견기업이 너무나 취약하다.

현재 중견제조업체는 모두 4백20개사.

이는 전체 제조업체 9만6천여개업체중 0.4%에 지나지 않는다.

허리가 이처럼 약해서야 어떻게 힘을 쓸 수가 있나.

더욱 불안한 건 그나마 남아있는 중견기업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리기업이 지난 88년에만 해도 5백94개사였다.

전체의 1%가까이 됐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매년 급감세를 보였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급증하는데 중견기업은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이로 인해 중견기업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2만5천여명이나 다른 부분으로
빠져나갔다.

허리가 약해진게 아니라 드디어 삐어버렸다.

대체 산업구조의 허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여기엔 제도적인 잘못이 가장 크다.

우리나라엔 중소기업과 대기업 지원제도는 있으나 중견기업 지원제도는
전혀 없다.

5공화국 때 중견수출기업지원제도가 있었을 따름이다.

중견기업이 얼마나 소외당하는지 살펴보자.

현재 중소기업에겐 투자세액 공제 등 25가지에 이르는 세금감면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중견기업엔 이런 혜택이 없다.

금융조달에서도 중소기업에 대해선 의무대출비율을 둬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겐 연간 2조원에 달하는 구조개선자금을 저리로 빌릴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이것들 역시 중견기업에겐 하나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기업들이 누리는 혜택도 받지 못한다.

올들어부터 시행된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보라.

진로 대농 등 여러 대기업이 이 제도의 덕을 본 셈.

그러나 이들 부도유예 업체에 납품하던 많은 중견기업들은 외롭게 버티다
쓰러지고 말았다.

더욱이 어음할인한도나 세제상 접대비한도 등도 매출액기준으로 정하는
바람에 중견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엄청나게 불리한 입장.

이런 처지에서도 중견기업들은 기계장비 등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더이상 육성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결국 허리디스크에
걸리고 말 것이다.

곧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형편인데도 누구하나 대책을 마련할 생각이
없다.

정부도 금융기관도 지원기관도 그들을 외면한다.

과연 이 상태를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이렇게 허리가 삔 상태로 국제경쟁에 나설 순 없다.

지금이라도 바삐 허리를 보강하는 대책을 마련하자.

중소기업의 범위를 더 높여 중견기업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거나
중견기업 대책을 별도로 세우자.

거듭 강조하지만 요즘은 축구도 허리대인 미드필드에서 강해야 이긴다.

<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4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