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과연 음울한 학문인가.

지금부터 2백년전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곡물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간의 생활은 최저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미래에 대한 비관론을 피력하였다.

당시 경제학계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정치학계에서는 갓윈의
"정치정의론"이 풍미하였으며, 경제적 번영과 유토피아 사회의 도래라는
낙관론이 대두되고 있었다.

인구증가는 생산력을 늘려 국부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던 시대였다.

비관론의 제시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충격을 주었으며 후일 맬서스의
글을 읽은 칼 라일이 한말이 바로 "경제학은 음울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갓윈은 맬서스가 진보주의자들을 보수반동주의자로 바꾸어놓았다고
불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리카도는 "정치경제원론"에서 경제원칙, 즉 인간의
경제행동 법칙을 추상적이고 기계적으로 기술하였다.

애덤 스미스의 인간미는 찾아볼 수 없다.

애덤 스미스가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의 구성원 같이 함께 잘 살게 되는
경제를 보고 있었다면, 리카도는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극심한 경쟁의 경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리카도는 맬서스의 이론에 동의하지 않았고 자유무역의 이득, 통화와 조세
그리고 경제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맬서스의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25년마다 인구가 두배가 될 것이란 가정은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들어맞지
않았다.

농업기술 진보에 따른 "그린 혁명", 산아제한, 높아진 여성 결혼연령,
여성의 사회활동진출 등의 현상이 맬서스의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리카도의 분석에서 나타난 시장원리에 의한 경제행동의 법칙을 간과한
결과이다.

리카도는 냉엄한 현실에 원론적으로 접근하였기에 인간적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오히려 인간본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내포한
분석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배워야 할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이론인가.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에 서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아사태 금융시장불안 증시폭락 등 그야말로 음울한 표현들이 경제현실로
대표되고 있다.

올해의 경제성장률이 6% 이상이 될 것이고 내년의 성장률은 더 높을
것이며 물가도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국제수지 적자폭도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민간경제연구소의 전망, 경제의 기초여건이 건실하다는
IMF 등 국제기관의 평가가 무색한 상황이다.

일부 경제전문가 및 언론은 정부가 개입해서 직접 경제현안들을 처리하여야
한다는 주장마저 펴고 있다.

지금의 경제현안들은 과거 정부주도 대기업 위주의 양적팽창 성장전략이
초래한 것이다.

복합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한마디로 기업부실과 금융부실이 핵심
사안이다.

물론 이는 상호 연관된 현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본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특정사안에 대하여 특유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글로벌 경제
체제속에서 효과를 나타낼 수 없을 뿐더러 경제행동법칙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창출한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시장기능이 정착되지 않은 여건에서 고도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나타난 부작용은 원칙에 따라 시장기능의 작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냉철한
대응방안이다.

과거로의 회귀가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이 과거정책의 유물이듯 현재의 정책이 미래의 경제상황을
결정한다는 엄연한 인과관계를 인식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논리가 정부는 수수방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실패한 부실기업은 퇴출을 유도하든지 또는 정부의 책임하에
소생시키든지 과단성있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시장기능의 혼돈이 파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역시 정부의
의무이다.

오히려 시장원리에 맞게 경제행동법칙을 세우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부실기업과 금융문제 해결은 시장기능의 작동으로 해결되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시장에서 퇴출되는 인력에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부실채권의 정리, 기업의 인수합병, 금융개혁, 노동시장개혁 등에 관련된
제도개혁 법안을 경제의 글로벌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제정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다.

경제학은 음울한 학문이 아니라 냉엄한 학문인 것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 약력 ]]

<>서울대 상대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박사
<>대통령 경제비서관(1급)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
<>주 프랑스 공사(OECD담당)
<>경제기획원장관 자문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