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혼란과 연쇄부도, 국제화와 무한경쟁이란 거센 파도가 국내 기업들을
강타하고 있다.

한꺼번에 밀려드는 대변혁의 물결은 국내 기업들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땅의 기업들은 전례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구식 이론을 교과서로
삼아 새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경영학의 권위자인 수만트라 고샬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우리기업들에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되 서구식 패러다임을 무턱대고 답습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LG그룹 초청으로 "글로벌 CEO전략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고샬 교수는 "서구식 수익위주 경영이 아니라 한국식 성장중심의 경영을
밀고 나가라"고 강조했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대기업의 사업다각화전략에 대해서도 서구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다각화가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증명됐다고
역설했다.

또 국제화 시대에서는 해외시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학습능력을 갖춘
조직을 건설할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경제학박사)이 고샬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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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조정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업들이 줄이어 도산하고 수익성도 극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고샬 교수 =경기순환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세계화라는 흐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기업들에 세계시장에서는 물론 국내시장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 삼성 LG 대우 같은 대기업은 그래도 해외시장에서의 경험이 있지만
다른 내수위주의 기업들은 급속한 시장개방으로 인해 경쟁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한 경기가 호전된다 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기업들은 지금까지 양적인 성장을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한계에 이른 것 같습니다.

성과의 획기적 개선없이는 생존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기업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 고샬 교수 =우선 자본주의를 기업자본주의와 경영자본주의로 구분하고
싶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대기업은 아직도 가족중심이고 기업가 정신이
강조되는 기업자본주의입니다.

기업자본주의에서는 성장이 수익보다 더 중요시됩니다.

이런 회사들은 수익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수익은 사회나 국가발전과 같은
"보다 큰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반면 포드 GM IBM 등 대다수 미국 기업들은 전문경영인들이 수익을 최고
목표로 추구하는 경영자본주의입니다.

이들 기업들도 성장기에는 수익만 아니라 "보다 원대한" 목표를 지향
했습니다.

성숙한 이후에야 주주와 수익을 중시하는 경영자본주의를 추구하게
됐습니다.

삼성 현대 등 한국기업들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기업들은 성숙하면서 점차 기업자본주의에서 경영자본주의로
이행할 것으로 보십니까.

<> 고샬 교수 =미국은 금세기초에는 성장시장이었지만 오늘날 효율적이고
주주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이 가득한 성숙시장이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위대한 기업들은 미국이 아니라 다른 시장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30년쯤후 세계적인 기업은 미국보다는 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중에서 일부가 미국의 거대기업처럼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수익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서구 기업들에 비해 재무구조가 부실하고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에 급선무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수익성을 제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샬 교수 =옳습니다.

한국 회사들의 목표는 성장인데 이를 달성하자면 수익을 높여야 합니다.

수익은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수익없이는 자본 인력 기술이란 자원을
제공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다국적기업들은 지난 60년부터 80년까지 수익률이 서구기업에
뒤졌지만 소규모회사에서 미국과 유럽회사들에 필적하는 대기업으로 발돋움
했습니다.

GE는 삼성과 LG에 비해 수익률이 훨씬 높지만 지난 10년동안 연평균 4%
성장한데 불과했습니다.

LG는 지난40년간 연평균 20%씩 성장했습니다.

기업이 주주들의 가치를 최대한 높여주는 순수 경제주체를 지향할때 높은
수익성을 낳지만 사회적 공기를 추구할 때는 높은 성장을 가져 옵니다.

수익성과 성장성, 주주의 가치와 사회적 기여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고
선택할 것인가는 기업의 몫입니다.


-교수께서는 성장측면을 매우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지나치게 성장을 중시한 나머지 지금과
같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집단 자각증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이 지향해온 바가 결코 바람직하다고만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 고샬 교수 =한국기업들이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선 수익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자원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게 사실입니다.

미국기업들은 지난 15년동안 자원생산성이 연간 6~8% 향상되면서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적용된 이론이 세계전체에 적용된다고 믿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미국의 경험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대기업은 다각화를 지양하고 전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대다수는 믿습니다.

이는 미국과 영국 등 성숙시장에서는 그렇지만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 성장
시장에서는 다릅니다.

한국기업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맞이하고 있는 기회는 성숙시장의 기업들과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한국 국민들이나 정부는 언제나 대기업의 다각화전략을 문어발식 확장
이라고 비난하면서 무조건 나쁘다고만 여기는 선입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다각화에 반대하는 국민정서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고
정부의 정책도 기본적으로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 고샬 교수 =다각화된 기업이 전문화된 기업에 비해 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은 미국에서 나온 연구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나온 한 연구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다각화가 진행됨에 따라 경영성과가 좋아지다 어느
정도 지나면 각 사업부문간의 관련성이 적어지면서 경영성과는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인도 중국 등의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다각화
정도가 약할 때는 경영성과가 나쁘고,다각화를 더욱 진행했을 때 경영실적이
크게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당신의 글에서 "스위트 앤 사워 사이클(Sweet & Sour Cycle)" 이론을
읽었습니다.

한국기업들은 "달콤한" 미래를 얘기하는데는 강하지만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을 잘라내고 사업구조를 조정해야 하는 "고통스런"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해 왔습니다.

그래서 진지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 고샬 교수 =한국 회사들의 사업다각화 현황을 보면 수익성이 없는데도
자본과 경영자원의 투입을 필요로 하는 사업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경영자의 투입시간과 성과를 비교하면 이런 사업군은 기업전체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현실을 고칠 때가 왔습니다.

대기업들이 희망하는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업구조를 재조명하고
구조조정과 생산성향상을 위해 인력감축을 단행하는 등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들어서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만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가부장제적
기업문화, 평생직장 개념, 취약한 사회보험제도, 또 인력감축에 제약을
가하는 법적 규제가 구조조정의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 고샬 교수 =한국기업들은 흔히 한국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과 영국의 노동시장과 비교합니다.

독일 프랑스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독일은 한국처럼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지만 그 안에서도 성공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나옵니다.

지난 5년동안 다임러 벤츠는 법과 노조의 견제에 막혀 구조조정에 실패
했지만 폴크스바겐은 규제를 무릅쓰고 구조조정을 단행, 생산성을 끌어
올렸습니다.

요즘 양사의 경영실적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노동법은 분명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합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보듯 문제의 일부는 법에서 비롯되지만 일부는 기업자신
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제 막 시장개방을 시작,세계적인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진입
함으로써 수출시장 뿐 아니라 내수시장에서도 경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은 또 자본비용과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국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겠습니까.

<> 고샬 교수 =국제화의 성공요인으로는 흔히 시장구조 자본비용 노동비용
경제요인 등이 고려됩니다.

이런 전략적인 요인은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고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제화의 성패는 이런 전략적인 요인이 아니라 조직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고 봅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지시장을 파악하는 능력이 필수적
입니다.

해외시장을 파악할수 있는 능력, 즉 학습능력이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립니다.

성공의 주요변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보다는 지식,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나옵니다.


-한국기업들의 경영형태를 보면서 유지 발전시켜야 할 장점은 무엇이고
고쳐야 할 단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고샬 교수 =유럽과 미국기업의 경영자들은 5% 성장을 목표로 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의 경영자들은 20~30% 성장을 목표로 합니다.

역사적으로 기업은 경영자들의 마인드에 성장규모가 크게 좌우됐다는
점에서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한국기업들의
커다란 강점입니다.

비즈니스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정서적인 것입니다.

다만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따른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은 이 점에 대해 분석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는게 약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구기업으로부터 배운 지식을 무턱대고
모방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들은 서구지식을 자신의 몸에 맞게 적용시켜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한국기업들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지금 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 정리=유재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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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샬 교수 약력 ]

<> 미 MIT 슬로얀 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 박사
<> 미 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정책학 박사
<>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 교수 역임
<> MIT 슬로얀 경영대학원 교수 역임
<>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 저서 : ''글로벌경영'' ''조직이론'' ''다국적기업''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