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일 넘게 끌어온 기아사태가 바야흐로 막바지로 치닫는 느낌이다.

정부가 기아그룹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기아자동차의
경영진이 제3자 인수를 위한 수순 밟기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쨌든 이번 정부결정을 계기로 기아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며 이해 당사자들의 냉정한 판단과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고자 한다.

기아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기아자동차의 정상화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나아가 우리경제의 위기극복이 큰 차질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선홍 회장을 비롯한 현재의 경영진이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자금지원이 가능하다는 정부측과, 김선홍회장이 있어야 적극적인
자구노력이 가능하며 제3자 인수도 막을수 있다고 믿는 기아측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이통에 애꿎은 협력업체들만 부도위협에 시달렸고 금융시장과 국민경제는
금융불안과 연쇄부도 사태로 골병이 들었다.

기아그룹에 거액의 채권이 묶인 종금사들이 무더기로 부도위기에 몰리자
기업어음을 비롯한 단기금융시장이 경색됐고 그 결과 다른 기업들의 자금난을
악화시켜 연쇄부도 사태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철수조짐을 보임에 따라 외환 위기마저 우려될 정도로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 최근 금융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용공황의 조짐까지 우려되는 현재의 위기국면을 수습하고
경제안정을 다지기 위해서는 기아사태의 해결이 선결과제임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기아그룹 처리방침을 밝힌 이 마당에도 양자의 입장차이가
여전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우리는 기아측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고 현명하게
대응해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정부측이 기업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채권단과
기아그룹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당초의 입장을 버리고 기아자동차및
협력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약속한 이상 기아측도 회사살리기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기아측으로서는 정부가 화의신청을 거부하고 법정관리신청을
결정한데 대해 불만일수 있으며 이른바 제3자 인수를 위한 시나리오가
있다고 의심할수 있다.

그렇다고 협력업체들을 인질로 삼아 총파업에 들어가거나 정권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그야말로 경제논리를 떠나 정치논리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절대 반대한다.

비록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신청해도 법원에서 검토할때 기아측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할수 있으며 제3자 인수문제도 새 정부가 들어선뒤 결정되는
만큼 특정기업에의 인수에 대한 반대는 그때 해도 될 일인데 지금 위기에
빠진 국민경제를 볼모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지나친
집단이기주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