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사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 전재 ]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총리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프랑스 대통령이
나라를 경영하던 시절이었던 지난 70년대 후반과 80년대초에 걸쳐 국가간
화합을 유달리 강조했던 정치인들로 기록돼 있다.

특히 두 지도자는 유럽통합을 위해 열성을 다바쳤다.

당시의 열정은 후배 정치인들의 귀감으로 남아있고 일선에서 물러난지
오래된 지금까지도 두 거인의 말 한마디는 여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슈미트 전총리와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이 공동으로 최근 글로벌
뷰포인트에 ''어떻게 유럽 통합을 완성할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기고했다.

이들은 유럽의 통화통합에 이어 정치통일도 큰 마찰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합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독일과 프랑스가 합의과정을 주도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두 거물 정치인의 공동 기고문을 옮겨싣는다.

< 정리=양홍모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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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백여일 앞둔 1999년 1월1일을 기해 유럽의 통화통합이 발효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많은 금융시장의 거래인들까지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 바이마르에서 최근 열린 정상회담에서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대통령 및 리오넬 조스팽총리는 통화통합 일정을
반드시 준수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상황이 동조화될 수 있도록 서로 수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럽의 통화통합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건전한 국가재정을 강조하는 통합요건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도 통합을
위해 필요했던 절차로 비춰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노력에 찬사를 보내야 하며 통합 준비과정에서 빚어진
희생을 명예롭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가끔 논쟁이 유치하게 돌아가거나 논점을 잃고 본질적인 이슈를
망각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본질은 단일통화인 유러를 채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일통화제도를 계속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성공은 유러의 안정성을 구축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안정성있는 통화라는 것은 국민들과 기업들이 기꺼이 수용하고 회원국
정부가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화를 뜻한다.

통합작업이 잘 진행되려면 독일 국민들의 여론이 우호적이어야 한다.

독일 국민들은 금세기만 해도 두차례나 극심한 통화혼란을 겪으면서
파산자 신세가 된 경험을 갖고 있다.

제1차 및 제2차대전이 끝난 바로 그 시기이다.

이후 독일의 마르크화가 세계 어느 통화에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강한 통화가 됨으로써 돈에 대한 독일인들의 믿음도 되살아났다.

결과적으로 독일인들은 마르크를 대체할 어떤 단일통화가 정말로 마르크화
못지 않은 강한 통화인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이에 대해 유럽중앙은행의 법적 정치적 독립성을 내세워 독일인들을
안심시켜줄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국민소득 합계는 통화통합국 소득총계의 60%정도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10월중순 기준)의 인플레율과 장기금리로 따지면
프랑스가 독일보다 낮은 수준이다.

통화통합의 조건이 갖추어진 것으로 판단해도 무방하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번에 "통화안정화 협정"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독일 국민들을 심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기가 나빴다.

프랑스측이 이의를 달자 독일인들은 프랑스인들이 정말 통화통합을 유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 지도자가 유러의 안정성에 대해 일관성
있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유럽내 국가간의 경제력 격차를 조정하는데 있어 통화의 평가
절하나 절상이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통화통합이 이뤄지면 평가절하같은 도구는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환율조정이 의미가 없는 통화통합의 시대로 들어가면 경제 및 사회적
마찰과 인구이동이나 실업률문제 등을 해결할 여러 조정책이 필요하게 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여러가지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혼란 상태로
비화되지 않도록 사전 조정을 해야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신규회원국을 받아 들이는데 있어 계량적인 기준
뿐만 아니라 신규회원국이 기존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통합구도를
존중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한편 단일화폐와 공동 통화정책은 자동적으로 유럽의 경제통합을 확고하게
해주고 국가간 경기사이클의 편차도 없애줄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단일 통화의 성공 여부가 정치적인 변수에 달려있다.

정치적인 통합노력이 없는 상황에서의 단일 통화는 회원국들가운데 어떤
한 나라의 정권만 바뀌어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는 뿌리가 약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럽중앙은행이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통화통합 논의초기부터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해왔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경제 및 사회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독야청청하는
존재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정부의 시녀가 되는 것과 정부쪽에 통화정책의 기조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제도인 FRS(연방준비제도)를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고독한 존재가 아니며 그렇다고 무조건 입만 다물고
있는 중앙은행도 아니다.

유럽중앙은행의 위상 정립과 관련해 총재와 부총재는 통화정책에서
회원국을 통할할 수 있는 권위와 정책수단을 가져야 한다.

유럽통합과정에서 "더 발전된 단계"에 대해선 아직 이렇다할 결론이 나와
있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에 체결된 암스테르담 조약을 통해 뭔가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합의엔 실패했다.

암스테르담 회담이 더 큰 유럽을 어떻게 조직하며 어울릴 것같지 않은
주변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정치적인 주제로
향하는 것을 두고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10여전에 우리 두 사람이 통화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했을 당시
통화통합이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작업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된다.

통화통합은 유럽의 합중국화를 위해 필수적인 중간단계이며 일종의
촉진제로 인식됐다.

국가 이익이 상충해 생기는 회오리 바람을 피해갈 구조기구로 통화통합을
고집한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이미 합의된 단계를 넘어 다음 수순을 밟는데 있어서는
통화통합의 게임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국가들만이 논의과정에 참여해야만
효율적으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단일통화제도가 뿌리를 내리도록 하기 위해선 통화통합에 가입하는 회원국
및 후보국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지도자들이 주도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유러가 확고하게 정착될 때에만 우리는 유럽합중국이라는 원대한 정치적인
목표로 행진해 갈 수 있다.

[[ 헬무트 슈미트 - 약력 ]]

<>1918년 출생
<>1953년 연방의원
<>1969~72년 국방장관
<>1972~74년 재무장관
<>1974~82년 총리

[[ 지스카르 데스탱 - 약력 ]]

<>1926년 출생
<>1956년 국회의원
<>1962~66년 재무장관
<>1969~74년 재무장관
<>1974~81년 대통령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