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외국환관리규정 개정안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자금 조달 및 운용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한 것으로, 비록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시설재도입용 상업차관의 한도폐지 및 융자비율
상향조정, 현지 금융을 통해 조달한 해외 자금의 용도제한 완화, 기업의
해외금융기관 설립허용 등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정책당국에 대해 국제경쟁력유지를 위해 값싼 해외
자금을 쉽게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특혜시비
및 통화관리상의 어려움을 들어 거절해왔다.

따라서 이번에 외환규제를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대폭 완화하게 된 것은
해외금융의 자유화로 국내 금융시장의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경상수지 적자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자본마저 빠져
나간다면 최근 동남아 각국이 겪은 통화위기가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조치는 역설적으로 최근의 경제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에도 경제사정이 어렵고 위기국면이 계속되면
마지못해 규제완화가 이루어지고 경제자유화가 진전됐던 적이 많았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금융시장이 경색된지 오래됐는 데도 부실기업
정리 및 산업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고 한은특융,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
등과 같은 응급조치 만으로 대충 넘어가려 했던 것은 분명히 안이한
자세였다.

게다가 정치권의 비자금파문까지 겹치자 외국인 주식투자자의 철수조짐이
보이는 등 증시기반 붕괴 및 외환위기발생 가능성마저 염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특히 다음의 몇가지 점에 유의해야 이번 조치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최근의 금융불안 및 부도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인 부실기업정리 및
산업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재계순위 9위의 대기업이자 국내 3대 완성차업체의 하나로 수많은 거래
업체를 갖고 있는 기아그룹을 몇달씩 파산상태로 방치한채 실타래처럼 엉킨
현재의 위기상황을 풀 수 없음은 분명하다.

둘째로 외국환 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자칫 핫머니 유입으로 환율절상 통화팽창 등으로 수출위축, 물가상승,
경상수지 적자확대 등과 같이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면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게 된다.

외자도입의 완화는 금융비용의 절감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지, 무분별한 외자도입으로 당장 발등의 불을 끄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업들은 스스로 한계사업 정리와 경영합리화를 서둘러야 하겠다.

기업으로서는 값싼 해외자금을 보다 쉽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투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높은 수익을 얻느냐는 점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