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은 많이 풀리고 있는데도 기업들의 돈가뭄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만 돈이 머물고 있을뿐 돈이 돌지 않고 있는 탓이다.

더욱이 최근엔 정치권의 비자금 파문까지 겹쳐 금융기관 창구는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10대기업을 제외하곤 살아남을 기업이 하나도 없을 것이란
우려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 부실화에 이어 금융시스템 마비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현상 =시중유동성은 전반적으로 풍부한 편.

한국은행은 16일 16개 종금사에 1조원의 한은특융을 집행했다.

또 은행들로부터 환매채(RP)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5천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이에 따라 은행지급준비금은 적수기준 억원의 잉여상태를 보이고 있다.

돈이 많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금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이날 연 12.55%를 기록, 전날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하루짜리 콜금리가 전날보다 0.11%포인트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또 은행들의 당좌대출금리는 10일째 연17.1%를 기록하는 등 금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 원인 =금융기관 대출창구의 급속한 냉각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한보 삼미 기아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은행 종금사 등 금융기관들의
대출창구는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상태다.

여기에 정치권의 비자금 파문과 중견기업의 잇따른 부도설이 나돈 것이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나몰라라 팔짱을 끼고 있는 정부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는 정치권,
그리고 꼬리를 물로 이어지는 연쇄부도라는 삼각파도가 금융권을 꽁꽁
얼어붙게 한 것이다.

실제 은행들은 이날 쌍방울과 태일정밀이 발행한 어음에 대한 할인을 중단
하라고 영업점에 지시했다.

이와함께 종금사 등에 대해서는 지급보증한 돈을 물어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종금사들은 다시 할부금융사 등 제3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으며 멀쩡한 기업에 대한 여신연장도 거부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반영, 할부금융 및 파이낸스사의 어음할인율은 최고 연18%대
에 이르러 한 두달전에 비해 2~3%포인트 가량 올랐다.

한마디로 "대기업 부도-금융기관 동반부실화-신용 경색-기업연쇄 부도"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전망및 대책 =이같은 신용경색은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는한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지난달말을 고비로 진정세를 보이던 대외신인도 하락추세가 다시
재현될 소지가 있어 자칫하면 신용경색은 오히려 심화될 공산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 종금사 임원은 "종금사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대상은 여신금액이 수백억원
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계순위 10~30위권 기업들로 여신액이 1백억원
이내의 중견 이하 기업들은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시중은행임원은 "이러다간 은행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아무리 돈을 많이 풀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금융
시스템을 정상으로 복귀시킬만한 정부의 확실한 안정화대책과 의지가 절실
하다"고 지적했다.

<하영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