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이나 만년필이 없던 시절에도 보험회사가 있었으니 영업맨이 없었을리
없다.

그 당시 펜을 잉크에 찍어 계약서를 쓴 것은 불문가지.

그러다보니 보험설계사가 겪어야 할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가방안에서 잉크가 새거나 책상위에 있던 잉크병이 엎지러지기라도 하면
천신만고끝에 고객을 설득, 작성하던 청약서가 못 쓰게 돼 계약이 취소되는
일도 생기곤 했다.

게다가 비까지 오는 날이면 물이 새어들어가기 십상이어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 다반사였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1884년 미국에서 보험세일즈로 이름을 날렸던 루이스 E 워터맨도 예외는
아니어서 잉크병 없이 전천후 영업을 할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중이었다.

자신의 영업실적은 물론 고객의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잉크병을 대체할수
있는 필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던 차 반짝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금의 플라스틱과 비슷한 에보나이트 대롱이 방수가 되는 점에 착안,
이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난 것.

에보나이트 대롱안에 잉크를 넣고 다른 끝에 펜촉을 달아 글씨를 써 본 것.

그 결과는 기대이상의 성공작이었다.

이제 워터맨에게 있어 비 오는 날은 더이상 공치는 날이 아니었다.

이소식을 접한 다른 보험영업맨들이 그를 찾아와 에보나이트 펜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워터맨은 신무기공장을 차리고 바로 그때 태어난게 워터맨
만년필의 원조.

한 보험세일즈맨의 철저한 프로의식이 만년필이란 상품을 만들어 낸 셈이다.

우리는 요즘 모집인보단 설계사라고 부른다.

보험영업을 전문직으로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계약자입장에서 프로 설계사들은 대단히 소중하다.

일반사람이 수많은 보험상품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자신의 처지에
맞는 것을 고르는게 어렵다보니 설계사의 권유와 상담을 통해 가입할 상품을
택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 좋은 설계사를 만나야 제대로 된 보험에 들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프로설계사와의 만남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시판 3년이 넘은 개인연금을 가입한 사람중 적지않은 이가 반드시 만60세
까지 보험료를 내야 연금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각자의 나이가 다르고 소득도 다른데도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설계사가 유독 60세형만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싼 보험료에 광범위한 위험보상을 약속하는 보장성상품의 안내장마저 갖고
다니지 않은 설계사가 한 둘이 아니다.

이들 설계사들은 모두 프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면 너무 지나칠까.

보험 가입을 권유받거나 원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설계사가 진짜 프로인지
부터 가려내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앞서 고객의 니드와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