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믿기 시작한 하나님 아버지를 팔면서 강은자가 떠든다.

"하나님은 너무 심술맞어. 그 잘 난 박사들 모두 주무시나? 그 균
나온지가 언젠데 아직 못잡아"

그녀는 포도주를 한잔 단숨에 들이켜면서 약간 맛이 간 혀꼬부라진
소리로, "이거야 원, 어디 세상 살 맛이 나나. 아직 오십도 안 돼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으니, 너나 나나 이거 뭐 얼어죽을 귀신 같은 팔자냐
말이야. 어이 사돈, 내 말 좀 들어봐. 그래 너는 의사 주제에 그것도 하나
못 가르쳐주면서 베개 안고 마스터베이션이나 하라구. 야, 정말 드러버서
몬 살것다.

그놈의 영감 살아 있을 때는 구박을 해서 징징 울더니 이게 뭐꼬?
뭐 말라죽은 재수없는 팔잔고. 내사 마 요새는 슬슬 물이 올라서 몬
살것다 앙이가.

늬는 그래 이 기막히는 사정을 어떻게 해결하고 사노? 우리 사돈끼리
한번 터놓고 살자. 늬는 무슨 방법으로 십년이나 수절을 하고 사나?
먹을 것 있고, 잘 곳 있고, 좋은 옷 입고 나니 침대가 빈 것, 이것이 문제
아닌고"

그들이 포도주를 한병 다 비우자 아까왔던 그 계집애같은 웨이터 녀석이
얼른 달려와서 애교를 살살 떤다.

"아줌마, 한병 더 드려요. 아줌마 좋아하는 1890년산 말이야. 우리
아줌마 오늘 정말 매력적이야"

"그래, 마시고나 보자. 내가 차운전 몬 하면 네가 해준다고 했지?"

"네. 아줌마, 걱정 말고 드셔유. 요전에도 지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지
않었어유?"

그러고 보니 강은자와 그 녀석은 뭐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도 같다.

"얘, 저 애가 너의 애인이냐? 이거냐구?"

"응. 내가 언제 너에게 말했던가? 이제는 살살 꼬신다.

그런데 나는 에이즈때문에 단단히 문 걸어 잠그고 살아. 남자를 돌보듯
한다 이 말이야. 히히히"

"암 그래야지. 영감님이 돈도 많이 주고 죽었겠다.

너야말로 지금 죽으면 억울해서 눈 못 감지. 고생도 많이 했잖니?
슈퍼마켓 처음 시작할때 말야"

"말도 말아. 좀 살만 하니 그이가 가버렸잖아. 나 좀 울까? 우우우,
서러워 몬 산다. 어이구우, 이 영감아"

그녀는 진정 통곡을 시작할 태세다.

전에도 그녀는 술만 취하면 남편이 불쌍해서 울고,자기가 불쌍해서
울었다.

주사가 나오는 것이다.

"울지마, 창피하다. 여기서 내 환자들을 만날 수도 있어. 얘, 술주정
하려거든 우리 집으로 가자"

이때 웨이터가 얼음에 채운 포도주병을 들고 허겁지겁 달려온다.

"아줌마, 울지 말아요. 아줌마가 울면 우리같은 청춘은 어떻게 해요?
이쁜 아줌마, 눈물 닦아요"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까지 닦아준다.

"늬 청춘이 뭐가 어떤데? 나같이 기막힐까?"

그러자 공박사의 신분이나 성깔을 모르는 웨이터 녀석은 강은자의
손목을 꼭 잡으며, "아줌마, 그러게 내가 어제도 예쁜 형님을 소개한다고
했잖어요? 울긴 왜 울어요. 안 그래요? 새로 온 아줌마, 울 아줌마 우는 것
바보짓이지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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