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대단히 어렵다.

기업들은 몸집줄이기에 여념이 없고 취업문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재계서열 8위인 기아를 비롯 삼미 진로 대농등 대기업들도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불황에 특효약이란 없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규제철폐가 경제를 회생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뉴질랜드가 규제철폐를 통해 경제선진국으로 부활했고 미국 역시 같은
방법으로 강인한 미국을 재현했다.

이제 더이상 규제철폐를 늦춰서는 21세기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

본지는 "21세기는 규제파괴시대"라는 타이틀로 10여회의 시리즈기사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는 주 1회 게재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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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혁파"는 하나의 시대언어다.

그것은 대중의 슬로건이며 정치의 지표이며 치열한 국가간 경제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뉴질랜드며 호주며 영국이며 급기야 자유시장의 교과서라는 미국도 규제
혁파를 통해 경제의 회생을 도모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규제 없는 경쟁의 큰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는 생존할수 없는 시대가 이미
다가온 것이다.

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일본을 배우자"는 80년대의 굴욕적인 슬로건들을
이미 일본에 깨끗이 되돌려 주고 있다.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규제의 사실상 전면적인 철폐는 미국의 수도 없는
창업 기업들을 경제의 전면에 포진시키고 자금주와 창업 기업인들을 그물망
처럼 짜내는 기적을 발휘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제조업 시간당 임금이 일본(27달러) 독일(33.6달러)에
비해 오히려 낮은 22.2달러에 안착하게 됐다.

은행업계는 종전보다 더욱 높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90년대말
1만2천개이던 은행수를 1만개로, 직원수는 1백50만명에서 45만명으로 오히려
줄여 놓고 있다.

일본의 하시모토 2기 내각은 지금 행정 규제 완화에 정치 생명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와 경제 사회 모두가 지금 하시모토의 행정개혁이며 규제혁파며
금융개혁에서 장기 불황의 탈출구를 찾고 있다.

지난달 행정개혁위원회가 내놓은 파격적인 정부조직개편안으로 그들은 큰
그림을 어느정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금융개혁은 대장성의 개혁으로부터 시작해 정부 조직을 전면 개편하는데로
까지 이미 숨가쁘게 와닿고 있다.

단순히 번잡한 행정 서류와 서식을 간단히 하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경제의
구조를 바꾸고 시장의 자유를 관철하며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경제의
주권을 옮겨 놓는 사회개혁을 일본의 규제혁파는 노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규제 개혁의 깃발을 든 것은 지난 79년이었다.

당초 정치 슬로건에 불과했던 경제의 자율화와 경쟁의 촉진은 여기서 10년
을 건너뛴 지난 89년에야 정부차원의 대책반이 만들어지면서 구체화의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 대책반과 함께 경제난국 극복위원회까지 발족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채 시간만 보내고 말았다.

92년엔 행정규제완화위원회가 다시 간판을 달았고 문민정부로 들어선
93년3월엔 행정쇄신위 경제행정규제개혁위 기업활동심의위가 거창한 간판을
다시 내걸었다.

규제를 깬다면서 간판부터 내거는 일이 되풀이 되어 왔다.

어떻든 복잡한 서류를 줄여 주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모두
5천7백건의 규제가 풀렸다.

그러나 규제혁파의 본질은 손도 대지 못한채 시간만 허비했다.

아직도 무려 1만건의 규제가 혁파를 기다리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정치인들의 슬로건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작은 정부요,
규제의 완화였다.

그 결과 정부 부처들마다 규제개혁 기획단같은 것들이 만들어졌고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할일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공무원들의 보호처가 됐다.

문민정부는 획기적인 규제 혁파를 내걸고 재무부와 기획원을 통합하는
일대 개혁을 단행했으나 공룡의 탄생으로 결론이 났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권한의 집중과 독점에서 오는 아집과 편견만이 강화되었다는 차가운
시선을 지금 재경원은 받고 있다.

사회구조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지방자치 제도 역시 정치의
과잉만을 불렀을 뿐 당초에 달성코자 했던 민간주도 경제, 중소기업 창달,
소비자 중심주의, 효율적인 지역밀착 행정 등은 여전히 실종 상태에 있다.

결국 지난 3월에야 규제 혁파의 기본 정신이 다시 강조됐다.

시장경제와 경쟁있는 시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담합과 독점을 깨고 시장
자체를 특혜와 기득권의 틀에서 깨야 한다는 중간 결론에 도달했다.

이 정도의 기본인식에 도달하는데 만도 문민정부는 4년 이상을 허비했다.

겨우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면 주유소 제한의 철폐며 액화천연 가스 공급업,
소규모 전력공급업 등에서 일부 진입규제가 사라졌다.

수도 없는 건축규제들은 이제야 법개정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귀에도 따가운 공장설립 절차 간소화 등도 겨우 일정표에 올랐고 금융과
철강 등 대규모 산업 분야는 아직도 두터운 장벽뒤에 보호받고 있다.

규제혁파가 기득권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부터는 집단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정부는 부처들끼리, 민간은 단체들끼리 집단이기주의라는 진흙탕으로
서로를 끌고 들어가고 있다.

어렵사리 통과된 행정규제기본법을 두고 총무처 총리실 공정위가 서로
자기소관으로 만들려고 이전투구를 하는 한편에선 산업관련 부처들은 다시
산하 이익집단을 내세워 권한과 특혜의 온존을 도모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법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약사법이니 건축설계 관련 규제
개혁들은 모두가 딴전을 피우고 딴죽을 거는 허망한 전철을 밟고 있다.

무정부라고까지 일컬어질 21세기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로 다가서고 있다.

관료의 시대는 갔다.

독점의 시대도 갔다.

국내시장에서의 각종 기득권은 이미 보호가능한 범주를 넘어서 있다.

우리가 어떤 산업을 국내시장에서 보호한다고 보호되는 것이 아닌 시대가
됐다.

기업들 역시 겸허한 자세로 경쟁을 받아들이고 시장이라는 이름의 큰
바다로 나아가자.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