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 이성구 특파원 ]

유럽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Europe)창설의 마지막 관문인 경제통합을
앞두고 유럽연합(EU)이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다.

경제통화동맹(EMU)의 핵심인 단일통화 도입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데다 이에따른 회원국들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회원국들은 내년 5월초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EMU 1차 가입국을 선정한
후 오는 99년1월부터는 우선 가입국에 한해 단일통화인 유러화를
유통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가입여부를 판단하는 경제수렴조건은 올 12월31일을 기준으로
삼고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회원국들이 EMU에 가입하고 결과적으로 단일통화
도입이 성공하느냐 여부를 가름하는 것은 사실상 올해말이면 결판이 난다.

현 시점에서 통화통합이 오는 99년1월부터 공식 출범할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예정대로 단일통화가 통용되더라도 유러화가 유럽 기축통화로서의 안정성을
유지할 가능성도 극히 불투명하다.

물론 지난달 중순 룩셈부르크에서 개최된 회원국 재무장관회의와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독.불 정상회담"에서 각 회원국 수뇌진들은 "단일통화는
예정대로 추진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각 회원국들이 "총론"에는 입장을 같이하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각국마다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우선 유럽통합의 두 기관차인 독일과 프랑스만 봐도 그렇다.

양국 모두 EMU 1차가입에 필요한 경제조건을 만족시키기에 힘이 벅찬
상태다.

최대 현안인 정부재정적자부문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GDP(국내총생산)대비
3%를 웃돌고 있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의 가입기준은 "3%이내"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선 긴축정책을 펴야하나 문제는 두 회원국의
실업률이 12%에 육박, 사상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적자 축소와 실업률 감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어렵다는게
이들 국가의 고민거리인 셈이다.

게다가 독일과 프랑스간에는 경제수렴조건과 통합유럽의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깊은 골"이 상존해 있다.

독일이 재정적자 "3%"선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프랑스는
"3%를 웃돈다고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다.

이와관련, 프랑스의 조스팽사회당정권은 "올해 재정적자가 3%선을 넘는
것과 관계없이 EMU에 가입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상황이 어렵기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프랑스총선에서 사회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독일내에서 "유러화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가입조건을 충족시키기 힘든 상황에서 무리하게 EMU를
시행하다가는 유러화가 약세를 면치못할게 뻔한데 그럴바에야 연기하는 게
낫다는 불만이 야당인 사민당은 물론 집권 우파연합내에서 불거져나오고
있다.

99년에 공식 출범할 예정인 유럽중앙은행(ECB)과 각국 정부간의 외환
재정정책등 각종 경제정책이 순조롭게 조화를 이룰 것이냐는 점도 문제다.

독일은 유러화가 자국통화인 마르크화처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유럽중앙은행 정책의 독자성이 확보됨은 물론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에반해 프랑스를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은 겉으로는 이에 동조하면서도
유러화의 약세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유러화가 강세일 경우 수출부진과 고실업률 등에 허덕일게 뻔해서다.

보다 큰 걸림돌은 여론이다.

단일통화 실현에 반대하는 여론이 시간이 갈수록 서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어서다.

서유럽 국민들은 "정부가 경제수렴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긴축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실업난 해소는 커녕 오히려 실업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도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채 통화통합작업이 추진될 경우
엄청난 부작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르크화 대신 유러화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독일국민의 3분의2가 "노"라고 답했다.

"위기와 타협"을 거듭한 끝에 유럽연합을 형성하게된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볼때 통화통합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