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먹고,코카콜라를 마시며, 폭력성 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거나 랩송 같은 팝뮤직에 장단을 맞추며 어깨를 들썩이는 지구촌
곳곳의 청소년들...

얼마전까지 "세계 문화의 하부 구조를 지배하는 미국"을 약간의 경멸을
담아 설명할 때 단골로 이용돼 온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수사만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지식인들은 거의 없다.

뮤지컬의 본고장은 엄연히 영국의 런던이었지만 오늘날 "뮤지컬의
대명사"로 뉴욕 아닌 런던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주요 화가들은 파리를 떠나
뉴욕 맨해튼 남부의 소호(Soho)로 몰려들고 있다.

파리등 유럽의 도시들이 미국에 종주권을 빼앗긴 것은 순수미술 뿐만이
아니다.

"세계의 패션 1번지"라는 타이틀도 파리에서 캘빈 클라인의 본고장
뉴욕으로 옮겨가고 있다.

제각각 정교하고도 다양한 외양을 뽐내는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 건물이
들어차 있는 뉴욕 맨해튼의 파크 애버뉴와 렉싱턴 애버뉴는 산업
디자인업계의 "메카"로 통한다.

안네 소피 무터, 미도리, 사라 장에 이어 중국계 꼬마 피아니스트인
헬렌 황, 독일 출신의 다비드 가레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둥지를 튼 곳 역시 미국인들이 "세계의 수도(World Capital)"
라고 자부하고 있는 뉴욕이다.

미국의 세계 문화.예술.레저 지배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박찬호, 일본의 노모 히데오나 이라부 히데키 같은 특급
운동선수들까지 정상 무대에서의 입신양명을 목표로 미국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치.경제 뿐아니라 문화 예술분야에까지 "미국 일극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문물의 풍요라는 외형적 요인에 덧붙여 요즘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프로를 제대로 대접해주는" 미국적 풍토가 음악.영화.미술.패션
분야에서까지의 세계 제패라는 부상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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