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천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여당의 야권 대통령후보 비자금 폭로와 관련하여 정치권의 사활을 건
공방이 전개되는 시점에 정기국회의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국회의원들의 "흔적 남기기 식"질문이나 막연한 질타성
추궁에 치우쳤던 종전의 국정감사가 최근들어 쟁점사안에 대한 실증적인
문제제기와 대안제시형 비판에 주력하는 등 국정감사가 다소나마 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시점에 특정 대선후보를 저지하려는 정치세력과 이에 맞서는
세력간의 이전투구식 대결이 국정감사장으로 옮겨온 느낌이다.

사실상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의 국정감사에 관한한 여야를 구분하는
의미는 그렇게 크지 않다.

왜냐하면 감사원의 감사기능이 존재하고 행정부처 및 주요 공공기관에
내부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한, 국회의 국정감사는 3권분립
취지와 국민대표기구의 특성에 맞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의 정책
수립과 집행상의 부당 위법 미진한 부분을 지적, 향후 바람직한 국정수행의
좌표를 도출하는 입헌적 수준의 국가작용이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국민직선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고 있더라도 그 운영은 임명직
국무위원과 직업관료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국회의 국정감사는
이들이 추구하는 자기이익적 행태를 제어하고 이들이 간과하기 쉬운 국민적
공동이익을 투입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만일 국회의 국정감사가 특정 대통령후보의 병역문제 시비나 "비자금
조성설" 등 정치적 공방에 휘말려 소모적 정권장악 투쟁의 무대로 활용됨
으로써 국정감사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국회의 국정점검의 책임이 유실되며,
이로인한 대가는 국민들이 치르게 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나머지 국정감사 기간만이라도 행정부가 추진한 시책에 대한 주도면밀한
사후점검을 통하여 추후 법령의 개폐와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반영함으로써
국정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데 국회의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그동안 상임위별 국정감사를 지켜보면서 국정감사가 소관부서가 수행하는
"모든 일"을 사안의 경중을 가릴 것 없이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과 인력을 감안할 때 주요 국책사업이나 쟁점사안에
감사에너지를 집중시키면서 의원별로 분담영역을 설정, 팀플레이를 구사하는
것이 효율적인 감사의 첩경일 것이다.

이와같은 효율적인 국정감사가 정착될 경우 무차별적 요구자료와 답변
준비에 전전긍긍하는 대다수 간부직 공직자들의 부담을 줄이게 됨으로써
감사로 인한 행정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

사실상 감사원이 이미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종료한 상태에서 국회는
각종 시책과 예산집행의 원천이 되었던 행정부의 정책선택이 과연 국가적
국민경제적 목표에 부합했는가를 검증하면서 정책변경의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사업시행의 완급을 판별하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막연히 여당이라고 해서 행정부를 두둔하고 야당이라고 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할 것이 아니다.

국회는 행정부의 차원을 뛰어넘어 그동안 국가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예
고속철도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의 뿌리가 되었던 왜곡된 정책선택과
타당성이 미흡한 소관사업을 시정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만일 행정부의 왜곡된 정책선택이나 미진한 시책추진이 국회의 감사권능을
거치면서도 시정되지 않는다면 국회는 추후 이로인한 국리민복의 훼손에
대한 공동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곧이어 착수될 새해 예산안 심의와 국정감사가 결코 무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정감사에서 지적되는 부적정한 정부활동이 사실상 예산의
과소책정이나 무리한 예산배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정감사를 통하여 확인된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예산심의과정에
반영하는 노력이 긴요하다.

혹시라도 국회의 국정감사가 말초적인 집행수준의 문제에까지 뻗쳐질 경우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행태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적극적 공직수행에 매진하는 공무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옥석을 가리면서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성숙된 모습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정감사가 일과성 정치행사에 그치지 않고 국정수행의 권위있는 평가
작업과 향후 국정수행의 향도가 될 수 있도록 국정감사 결과 도출된 시정
의견과 개선사항을 상임위별로 문서화하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정감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이 행정부를 상대로 호통을 치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은 감사활동의 진면목을 엄중히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