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정부는 대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을 발표한바 있다.

이에 대하여 재계는 강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금융시장 조기개방을 통한 고금리 해소를 경제위기 해결 대책으로
제시하여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대기업 정책과 이에 대한 재계의 반발은 새로운 일이 아니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정책방향에 대하여 정부와 재계간에 심각한 충돌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양상은 경제난국 타개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정부는 대기업의 만성적인 차입의존 경영과 방만한 선단식 경영구조가
경쟁력 강화에 중대한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최근의 대기업 부도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고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체질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책의 기조는 세법을 통하여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되, 금융과
공정거래 측면에서는 대기업 집단의 부실하고 비효율적인 경영구조를
개혁시키겠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반면에 재계에서는 위기의 본질이 경직화된 고비용구조와 정부의 규제로
인한 경제의 활력상실에 있으며, 따라서 각종 규제완화를 통하여 기업의
경영여건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이 기업의 최대 애로가 되고 있으므로
금융시장의 조기 개방으로 금리 인하를 도모하는 것이 경제회생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편 대기업정책 강화의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폭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차제에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촉진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수반되더라도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대기업들은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 대기업정책을 강화하는 것은 투자 부진과 사업 의욕저하 등을
유발하여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발표한 대기업 정책이 강행될 경우 대기업들이 당장에 내년
3월까지 해결해야 할 자기자본의 100%를 초과하는 계열사 채무보증
규모는 80개사 6조원에 이르며, 계열기업간 채무보증이 금지되는 2000년
4월까지 총 35조2천억원을 해결해야 한다.

또한 동일 계열기업군에 대한 여신한도관리제로 축소해야 할 차입금
규모는 2조1천억원에 달하며, 2000년부터 자기자본의 5배를 초과하는
차입금 이자는 손비 인정을 받을수 없게 됨에 따라 축소해야 할 차입금
규모는 1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만성적인 차입의존 경영의 폐단이
고쳐져야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정부로서는 대기업 부실로 인한 도산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대기업 정책을 강화할 만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책의 적용시기와 정책수단의 적합성에 있다.

특히 전환기의 경제에서는 경제변수들의 관계가 불안정하고 경제행위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정책이 민간부문에 미치는 충격을 예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구조개선도 중요하지만 이 정책이 관련 시장에 미칠
영향과 경기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균형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극도로 어려운 여건하에서 무엇으로
상환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또 투자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원화로 환산한 수출단가는 95년에 비하여 97년6월까지 9.2% 하락한 반면
이 기간에 수입단가는 12.7% 상승하였으며, 매출증가율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함에 따라 기업들의 현금흐름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한편 부동산을 매각하여 금융기관 부채를 상환할 경우 양도세를 면제해
준다고는 하나, 성업공사의 부동산 매각도 부진한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매수자들이 일괄하여 매도자로 변할때 과연 부동산 매각이 가능할
지도 의문이 아닐수 없다.

또 증권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증권공급 과잉으로 인한 충격이 우려된다.

자금흐름이 전반적으로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 매각이나
증권발행으로 부채상환 자금을 마련하라는 요구 자체가 무리이다.

한편 대기업들은 위기극복을 위한 자구노력을 보여주기 보다는 금융시장
개방을 통한 금리인하를 위기 탈출의 돌파구로 삼고자 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과다한 채무문제를 안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제는 외자
유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구조조정 정책과 근본적으로 상치된다.

정부의 재무구조 개선책과 관련, 매만 있고 당근은 없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시기적으로 무리한 대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반면에 재계는 민간주도시대의 경제를 주도할 만한 설득력과 행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정책의 추진을 보다 균형있고 현실적으로 적합성있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