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박사는 그가 골프코치라는 말에 뭔가 번쩍 떠오르는게 있다.

혹시 지영웅 아닐까?

"그 사람 나이가 몇살이니?"

"한 이십팔구세 되어 보여요.

재미 교포도 아니구 지글러야"

"지글러라니? 그럼 너하고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그녀는 재산을 노린 무슨 흑막이 있는게 아닌가 하고 공포를 느낀다.

미아는 그녀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남편없이 곱게 기른 맏딸이다.

이런 미아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큰일이다.

"미아야, 자세히 말해봐. 그 남자는 아주 미남이고 이 근처 골프연습장
코치이지?"

"네. 엄마가 그 남자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름이 뭐든 나는 그 남자하고 하룻밤만 잤으면 해. 그것 뿐이야"

그 순간 공박사의 바른손이 철썩 미아의 뺨을 갈긴다.

"엄마, 때리지만 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해주면 안돼?"

미아가 뺨을 손으로 쓸면서 악을 쓴다.

"엄마, 나는 지금 환자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그 남자가 나를
유혹해주기를 바라고 매일 골프연습장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공부고 뭐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다시 말해봐. 너는 지금 약간 미쳤어. 사랑 때문에 크레이지가 된 거야.
내가 그를 만나야겠다.

과연 우리 미아가 사랑할 만한 남자인가 아닌가를 알아야겠어"

그녀는 옷을 챙겨 입으면서 미아를 일으킨다.

도무지 떨려서 견딜 수가 없다.

"앞장서라. 골프연습장에 가서 그 남자를 가리켜줘. 그러면 내가 너에게
판단을 내려줄 수 있어"

"그건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문제는 그 남자가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거야.

오히려 싫어하고 피하고 버러지같이 본다는 것이에요"

"짝사랑에 미친다더니, 네가 지금 짝사랑에 걸려든 거야"

그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눈물을 훔친다.

공박사는 아무래도 그 남자가 지영웅 같은데, 하필이면 귀중한 딸 미아가
콜보이인 녀석에게 반했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을지 앞이 캄캄하다.

그러나 어째서 지영웅은 미아를 계속 물먹이는 걸까?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재산 미모 나이 학벌 모든게 너무나 과남한
미아를 왜 싫다고 무시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타구니를 슬슬
만지면서 말하던 더러운 녀석이 무슨 술수를 쓰는 것 같다.

공박사는 후들후들 떨면서 딸을 앞세우고 그 골프연습장으로 달려간다.

"얘, 너는 밖에 있어. 나에게 저 사람 이라고만 하면 돼.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