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나면 자리를 만들고 관할권을 넓히려는 관료조직의 속성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주택기금을 맡아 운영할 "주택금융공사" 또는 "국민주택기금 관리공단"
을 만들겠다는 건설교통부의 계획이 바로 그 예다.

건교부발표에 따르면 올해안에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만든 뒤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빠르면 내년 하반기중에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 7월말 현재 25조 1천4백25억원의 국민주택기금이 청약저축가입
국민주택채권 주택복권판매 등의 방법을 통해 조성돼 있다.

건교부는 그동안 기금운영을 위탁관리해왔던 한국주택은행이 지난 9월1일
부터 민영화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금관리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기금운영을 다른 은행에도 개방함으로써 경쟁을 통해 수수료를 낮추고
운영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설립 취지다.

우리는 국민주택기금 운영을 모든 은행에 개방해 경쟁을 시킨다는 점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주택은행이 주택금융을 전담하는 국책은행으로 설립됐지만 이미 민영화된
마당에 국민주택 기금운영을독점해야 할 명분은 없다.

또한 경쟁을 통해 운영효율을 높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기금운영을 모든 은행에 개방한다는 것과 별도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기금운영을 모든 은행에 개방한다 해도 어차피 건교부가 직접 기금을 운영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만한 전문지식도 없으니 기금운영을 위탁 관리하는
은행 숫자만 늘어날 뿐인데 별도 기관을 만들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
되기 때문이다.

사실 건교부도 이런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며 별도기관 설립을 추진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주택은행이 국민주택기금을 맡아 운영하던 10여년 전부터 이미 연례행사
처럼 "주택금융공사" 설립을 추진했으나 관계부처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던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기금운영의 개방을 핑계로 또 다시 해묵은 기관설립안을
들고 나온 것은 한심한 일이다.

건교부는 이웃나라인 일본이 행정공무원 17만명을 줄일 계획이라는 소식도
듣지 못했는가.

게다가 아파트분양가가 자율화되면 청약저축가입이나 국민주택채권에
의존해온 기금조성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기금조성을 확대하려
하거나 별도의 관리기구를 만들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건교부는 기관설립보다 이미 조성된 국민주택기금을 어떻게 사용
해야 할지에 더 신경을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한 예로 국민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주택건설업체에 9%의 낮은 금리로
기금을 빌려주는 것은 주택보급률이 90%에 육박하는 요즘 서서히 축소해야
하며, 대신 임대주택건설 택지조성 공공용지확대 등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또한 원칙적으로 기금조성은 재정자금으로 충당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왜곡을
줄이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정부기능재편과 행정조직축소가 거론되고 있는 이번 기회에 건교부도 주택
정책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