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생활용품회사 프록터앤갬블(P&G)사의 주문담당
바이어인 짐 베이커씨는 지난 91년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수요량에 변동이 없어야 정상인 아기귀저기의 주문량이 월별로 들쭉날쭉했던
것.

베이커씨가 알아보니 주문을 할때 소매상 도매상을 거치며 주문량이 뻥튀기
되는게 원인이었다.

시장에서 조금만 인기가 있으면 소매상은 주문을 필요량보다 조금 많게
하고 도매상은 여기다 다시 뻥튀기를 해 P&G에 주문을 하다보니 제조회사인
P&G가 도매상에게서 주문서를 받았을 때는 엄청난 양이 된 것이다.

시장에서 인기가 다소 시들해지면 반대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P&G는 재고가 넘치거나 모자라 비용이 이만저만 드는게 아니었다.

이른바 "채찍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P&G는 최대의 소매상인 월마트와 두회사의 컴퓨터시스템을 연결해
POS(판매시점)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중간에서 주문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P&G공장은 컴퓨터앞에 앉아 월마트매장에서 시시각각으로 자기회사제품이
얼마나 팔리는지를 한눈에 볼수 있게 됐다.

P&G는 이를통해 약 10%의 비용을 절감했다.

재고비용이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지고 세일즈맨이 매장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월마트도 P&G에 비용을 줄인만큼 가격을 깎아 달라고 요구할수 있게 됐다.

월마트는 실제로 판매가격을 40%나 내리는 가격혁명에 성공했다.

둘다 이익이 된 것이다.

이른바 "윈-윈게임"을 한 것이다.

제조업과 유통업이 이같이 정보공유를 통한 "제판동맹"을 맺음에 따라
비용을 크게 줄일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검증을 통해 확인됐다.

미국의 커트새몬 컨설팅회사가 한 건식품회사에 이같은 시스템을 도입해
성과를 분석한 결과 공장과 도매상 소매상에 깔린 재고를 41%나 절감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비용이 무려 매출액(평균 소비자가격 기준)의 10.8%나 줄어들었다.

이 회사는 판매가격을 낮추어 비용절감분중 일부를 판매정보를 제공한
유통회사에 넘길수 있었다.

매출액대비 1~2%의 경상이익에 목을 매는 할인점이나 백화점같은 국내
유통업체에는 상상할수 없는 이익이다.

이런 "정보나눔의 경영"은 국내에서도 새로운 경영혁신흐름으로 유통업계에
선보이고 있다.

식품회사인 풀무원은 2년간에 걸친 경영혁신으로 전략정보시스템을
갖추었다.

현재 LG유통과 P&G와 월마트가 시행했던 방식의 정보공유방안을 추진중이다.

혁명적인 변화는 유통정보센터가 최근 시행에 들어간 POS데이터서비스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통정보센터는 백화점 할인점 체인형슈퍼등 전국 32개 대형유통업체가
업체별 품목별로 제공한 판매정보를 완전 전산화해 한장의 CD에 담아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에 뿌려주고 있다.

CD 한장으로 자기회사만이 아니라 경쟁회사의 판매동향을 손금보듯 볼수
있게 된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리얼타임이 아니고 아직은 월간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과 그 물건을 파는 유통업은 서로 물고 물리는
갈등과 긴장의 관계였다.

공급자 우위시대에 제조업자는 가격을 자신이 결정하고 그 가격대로
유통업자가 팔도록 했다.

소비자가격은 제조업자가 "권장"하는 가격에 팔아야 한다는 권장소비자가도
이런 공급우위시대의 흔적이다.

최근에는 대형할인점들이 들어서면서 가격결정권이 제조업자에서 유통업자
로 넘어 왔다.

권력이동인 셈이다.

그리고 무서운 "보복"이 시작됐다.

할인점은 제조업자에게 무조건 공급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땅값 금리 임금 등 비용요소를 더 이상 줄일수 없는 제조업체는
더는 못내리겠다고 버티고 있다.

이래서는 제조업이 모조리 문을 닫을수 밖에 없다는게 중소제조업체의
볼멘소리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움직임에 둔감하다.

할인점이 등장해 물가가 눈에 띄게 안정되자 그저 희희낙낙이다.

제조업이 공동화된다는 지적에 묵묵부답이다.

유통업체가 일방적으로 가격인하를 요구해도 제조업체가 이를 따라가는데는
한계가 있다.

갈등과 대립을 협력으로 바뀌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바로 정보의 공개와 공유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대폭적인 비용절감은 정보공유를 통해서만 이룰수 있고 월마트가 이룬
매출액대비 10%의 절감도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POS, EDI, ECR 등의 하드웨어 측면의 시스템은 선진국
못지 않다.

그러나 "유통정보를 유통시키자"는 이런 노력은 곳곳에서 걸림돌에 걸려
아직은 초기단계에서 머물고 있다.

가장 큰걸림돌은 인력부족이다.

그동안 "질낮은 사람이나 하는 일"쯤으로 인식되던 유통업이라 인력이
절대 부족한데다 최근 너나없이 유통업에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그나마
있던 전산인력도 메뚜기처럼 이회사 저회사로 옮겨다녀 해당기업의 전문가가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다 최고경영자의 정보화에 대한 무지까지 가세해 상황은 더욱 어렵다.

최소한 수십억원은 드는 전산투자비에 대해 효과는 생각지 않고 무조건
많다는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건설 부동산등을 하다 유통에 뛰어든 기업은 정도가 더
심하다는게 전산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정보공개를 꺼리는 우리기업의 정보폐쇄속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탈세 회계조작 비자금 등이 드러날까 두렵고 시장점유율이 남에게
알려지는게 피곤하다는게 경영진의 솔직한 고백이다.

중간관리자들도 정보독점이나 미공개를 통해 거래과정에서 사적인 이득을
얻을수 있는데 정보화가 되면 이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정보공개를 결사
반대한다.

정보의 공개와 공유는 개별기업의 비용을 절감시킬 뿐만아니라 경제 전체를
경쟁력있게 만든다.

지난 45년이후 요동을 치던 미국의 소비재 중간재 원자재의 평균 재고율이
지난 90년이후 매우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고율이 안정되면 기업의 투자비와 재고비용이 대거 줄어든다.

"이같은 미국의 재고안정은 유통업과 제조업의 정보공유등 전산화 정보화가
이룬 성과이고 이것이 최근 저물가 고성장의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경제의 비결이다"(서강대 변지석교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용절감은 공장내부 회사내부의 비능률제거만으로는 이룩할수 없다.

정보의 공개와 유통이 이를 해결할수 있다.

소비자만족이란 것도 더이상 종업원의 웃는 얼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 개별기업만으로도 안된다.

더많은 기업이 참여할수록 시너지효과가 커진다.

국가경쟁력강화도 임금 이자 땅값같은 고답적인 거시변수를 조작해 되는게
아니고 이런 미시적 차원의 혁신에서 이룰할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안상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