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초 월남과 월맹의 국경선 부근인 안케에서 월남전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우리소대인 맹호부대 1중대 1소대에서 발생했다.

우리의 임무는 최전방 OP에서의 경계와 월남과 월맹을 잇는 젖줄과도
같은 19번도로 경계였다.

적들은 야음을 틈타 철조망을 뚫고 우리의 OP에 침입하려다 발각되어
치열한 접전이 있은 다음날 우리의 보급로인 19번로를 완전 폭파하고
우리 OP를 포위했다.

그들은 우리와 마주한 638고지에 진을 치고 하루에 1백여발이상의 포를
쏘아댔다.

우리는 수색중대 지원으로 수없이 이 고지 탈환을 시도했지만 사상자만
늘어갔다.

우리의 모임은 이때 이루어졌다.

파월 당시 같은 소대에 근무했지만 귀국일이 서로 달라 연락이 끊겨
있다가 1985년께 보라매공원에서 파월장병 만남의 장이 있어 그곳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회명을 "일구회"라고 정하고 매월 19일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일구회"라함은 파월 당시 우리의 임무중 하나가 월남과 월맹을 연결하는
동맥과 같은 19번 도로 경계였기때문에 그렇게 정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지내기 위해 돌아가면서 가정방문 모임을 가져왔다.

죽음의 문전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몇명의 전우들이 매년 현충일이면
국립묘지에 모여 앞서간 전우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한다.

여름휴가때면 부부동반 휴가를 떠나기도 하며 봄 가을에는 가족이 모두
야외놀이를 떠나므로 전 가족이 끈끈한 정을 맺어오고 있다.

동호회나 동향인.동문 모임과 달리 우리는 사는 곳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연령도 다르지만 19일이면 지방에서까지 참석한다.

"일구회" 회원을 소개하면 건축업을 하는 이일순,인천시청에 근무하는
조승원, 정풍전산 상무이사 오세충, 불광초등학교 과학주임 이송도,
현대상선 상무이사 이직재, 남성사 전당포를 경영하는 임식, 여의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영만, 그리고 무역업을 하는 우리 모임의 회장
정규봉씨 등이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