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월드컵축구 한-일전에서의 승리는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후반들어 선제골을 허용하고 일본에 끌려가던 우리팀이 경기종료 8분여를
남겨놓고 두 골을 성공시켜 역전승으로 마감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짜릿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후 TV화면을 통해 똑같은 장면이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역전승의 묘미 때문일 것이다.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도 그러한 "역전승"을 거둘 여지는 없는 것인가.

결론부터 보자면 충분히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절대적 명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경제는 지금 한-일 축구에서 후반 20분께 일본에 선제골을 허용한후
종료 8분여를 남겨두고 동점골을 넣기까지 약 17분여의 불안하고 답답한
상황에 몰려 있는 셈이다.

연초의 한보철강부도를 비롯해 기아사태에 이르기까지 잇따른 대기업의
도산과, 그로 인한 금융불안이라는 선제골을 상대방에게 허용한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답답한 형국이다.

때문에 기아사태의 해결이라는 동점골이 화급을 다투는 일이고, 내친 김에
기업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회복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다만 축구와 경제가 다른 것은 축구팀이 감독 코치 등 지도부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제몫을 충실히 한데 반해 경제팀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국가경제의 근본을 흔들고 있는 기아문제의 해결에 감독 코치라 할 수
있는 정부와 채권금융단의 역할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하라는 시장경제논리만을 내세우는가 하면, 이제는
선수탓이라고 책임전가마저 서슴지 않는다.

애초부터 후반승부라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적절한 선수교체 등 성공적인
전략을 구사한 축구대표팀에 비해 보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한 동의여부를 둘러싸고 감독과 코치간에 손발이
안맞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그렇다고 일선에서 뛰는 기아그룹의 선수들은 어떠한가.

감독 코치의 작전지시도 무시한채 주장선수를 중심으로 제멋대로다.

선제골을 내준 참담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선수자신들 때문인데도 반성은
커녕 더 많은 지원을 안해준다는 목청만 높이고 있을 뿐이다.

공격과 수비의 핵심역할을 맡고 있는 노조는 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파업이고,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래가지고는 역전승을 기대하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부와 채권금융단은 물론 기아그룹의 경영진과 종업원들도 냉정을 되찾고
차분한 모습으로 해법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기아문제는 결코 한 기업, 한 그룹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와 금융기관, 나아가서는 국민경제의 사활이 걸린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기아의 경영권과 정부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당면한 금융불안을 해소하고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으로 야기될 혼란을 미리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채권금융단은 보다 빠른 전략선택과 보완책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기아 종사자들도 경영권 확보투쟁보다 기아라는 기업을 살아 남게 하는
실체적 대안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보다 적절한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화의절차를 밟든 법정관리에 들어가든 이대로는 기아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한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더이상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29일 부도유예협약적용이 끝난 기아그룹에 대해 채권금융단은 법정관리
신청을 권유했다.

그렇지만 기아스스로 신청하지 않는한 채권단이 일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기아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무엇이 해결됐고 어떠한 진전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허송세월이었다.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켰을 따름이다.

국가경제의 대외신인도 하락에 금융불안과 주가폭락, 협력업체 부도,
그리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증폭 등 보이지 않는 악영향까지 감안하면 그
손실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 핵심요인은 정부의 경제상황에 대한 위기의식부족 때문이다.

강경식 부총리는 어느 좌담회에서 위기도 아닌데 매스컴에서 과장보도하는
바람에 경제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런 점도 전혀 없진 않겠지만 너무 안이한 발상임에도 틀림없다.

지금부터라도 경제에 대한 상황인식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꾸고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통계청의 발표대로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기미를 보인다면 이를 앞당기기
위해서도 더욱 서두를 필요가 있다.

축구에 비유하면 지금은 경기가 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동점골이
터져야 결승골도 나올 수 있다.

한 차례의 슛으로 두 골을 넣어 승리할 방법은 없다.

"열린 시장경제로 가기위한 21세기 국가과제"를 실천하는 결승골에 앞서
기아사태파장을 수습하는 동점골이 우선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때마침 개천절을 맞아 비자금사건 등으로 법적 제재를 받았던 경제인들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이 이뤄진다고 한다.

"경제 역전승"을 위한 힘찬 응원이 되리라 생각된다.

축구대표팀의 승리를 거울삼아 이제는 경제팀도 감독 코치 선수들의 협력과
분발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일자).